종전 협상 젤렌스키 대통령 ‘패싱’ 현실화
‘달라진 미국’에 대응하는 유럽 정상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을 맞았다. 여전히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일상생활은 암울하다. 낮에는 러시아의 공격으로 숨진 민간인과 전사자를 추모하는 장례식과 추도식이 열리고, 밤에는 하늘을 뒤덮은 러시아 드론으로 인한 공습 사이렌으로 고통 받고 있다.
친러시아 행보 보이는 트럼프 대통령
나라 밖으로 눈을 돌리면 상황은 더욱 절망적이다. 강력한 우방이던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집권 2기를 맞아 우크라이나를 따돌리고 러시아와 휴전 협상을 벌이고 있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월 12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긴 통화’를 했으며 이후 전쟁을 즉시 중단하기 위한 협상을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트럼프는 이에 더해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 가입이 현실적이지 않다고 언급하며,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이전의 국경으로 복귀하는 것도 가능성이 낮다고 평가했다. 이런 발언은 우크라이나의 장기적 외교 전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이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추진했던 모스크바 고립 정책을 뒤집는 것으로,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3년간 중단됐던 직접 접촉을 재개한 의미를 갖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각각의 팀이 즉시 협상을 시작하도록 합의했으며, 지금 바로 젤렌스키에게 이 대화를 알리기 위해 전화를 걸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러시아에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면서 우크라이나의 협상력이 약화될 가능성이 커졌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러한 트럼프 대통령의 친러시아 행보로 인해 북대서양조약기구가 무너지기 시작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까지 제기되고 있다. 나토를 주도하는 미국이 가장 중대한 위협으로 설정하고 있는 러시아를 비호하는 기조를 보이며 나토의 근간인 집단방위의 억제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유럽 내 나토 동맹들은 군사력 약화 가능성을 넘어 미국의 나토 조약의 불이행 가능성도 심각하게 우려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고율관세를 앞세운 무역전쟁으로 유럽을 위협하고 유럽이 미국의 안보 지원에 무임승차하고 있다는 비판도 되풀이하고 있다.
젤렌스키 “우크라 나토 가입하면 즉시 사임 가능”
한편 유럽과 캐나다 정치지도자들은 전쟁 발발 3주년을 전후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잇달아 방문하고 있다. 이들은 젤렌스키 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의 노선변화에 대한 대응책 논의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은 미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에서 ‘패싱’ 당할 수 있다고 우려하며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는 분위기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배제한 평화협정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며 유럽의 참여를 촉구하고 있다. 그는 2월 14일 뮌헨 안보회의에서 “우크라이나를 제외한 어떠한 합의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유럽 역시 협상 테이블에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젤렌스키 대통령은 엑스(X)에 ‘3년간의 싸움’에 대해 우크라이나인들에게 감사하는 글을 올렸다. 그는 “3년간 우크라이나인들은 온전히 영웅적인 면모를 보였다”며 “우크라이나가 자랑스럽다”고 썼다. 또한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모든 사람이 영원히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한다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 평화가 온다면, 내가 정말 이 자리에서 떠나기를 바란다면 나는 준비돼 있다”며 “조건이 즉시 제공된다면 나토와 그것(대통령직)을 바꿀 수 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종전 협상에서 최대 쟁점이다. 러시아 역시 나토 가입 포기를 종전 조건의 한계선으로 그은 바 있어서다.
우크라이나를 배제한 미국과 러시아의 종전 협상 속 나토 가입을 ‘레드 라인’으로 내건 셈이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을 “선거를 치르지 않은 독재자”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 “진짜 독재자였다면 기분이 상했겠지만 나는 독재자가 아니다. 합법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라며 괘념치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단순한 중재자 이상의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입장을 이해하기를 바란다면서 러시아로부터 스스로 방어할 수 있도록 안보를 보장해 달라고 강조했다.
이슈메이커 손보승 기자 rounders23@issuemak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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