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부·학계에서도 개헌 필요성 제기
섣부른 개헌은 경계해야 한다는 신중론도
1987년 제9차 개헌 국민투표를 통해 제6공화국이 시작되며 군사 권위주의 시대를 극복하고 대통령을 직접 국민이 선출하는 직선제가 도입됐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헌법의 정신을 실현한 것이다. 이후 38년간 정치·사회·경제적 환경이 급변하면서 권력구조의 개편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커지며 여러 차례 개헌 논의가 있기도 했으나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되풀이되는 대통령 수난사
윤석열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43일 만인 지난 1월 15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체포됐다. 현직 대통령이 수사기관에 체포된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이후 19일에는 헌정사상 최초로 구속된 현직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이러한 한국 대통령의 비극사는 이전에도 있었다. 특히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는 ‘탄핵 정국’은 이번이 벌써 세 번째다. 대통령이 탄핵 소추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처음이다. 2004 노 전 대통령은 ‘선거 중립 의무 위반’ 등으로 국회에서 탄핵 소추됐다가 접수 63일 만에 헌법재판소의 ‘기각’ 결정으로 직무에 복귀해 2008년 2월까지 임기를 마쳤다.
두 번째 대통령 탄핵 소추는 2016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대상이었다.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에서 촉발된 탄핵소추안은 국회 통과 뒤 91일 만인 2017년 헌법재판소 재판관 만장일치 의견으로 ‘파면’ 결정되었다. 당시 헌재는 “법 위배 행위가 반복돼 헌법 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며 “대통령의 위헌, 위법 행위는 국민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 수호 관점에서 용납할 수 없는 중대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탄핵으로 파면되지는 않았으나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의 결말은 파란만장했다. 1987년 현행 헌법으로 개헌한 이후 선출된 5년 단임 대통령 8명 중 임기를 제대로 마치고 전직 대통령으로 예우받은 대통령은 김영삼, 김대중, 문재인 3명에 불과하다.
이처럼 윤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 문제와는 별개로,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 남용, 중앙집권적 권력구조의 부작용이라는 현행 헌법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지적이 많다. 이번 사태가 대통령 권력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 반복됐고, 특히 민주적 정당성을 보유한 또 다른 헌법기관인 국회와의 마찰은 노골화되며 결국 대통령제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났다는 문제 제기 때문이다.
권력구조 개편 필요성과 논의 꾸준히 진행
대통령제 개헌의 필요성은 학계에서도 오랫동안 제기돼 왔다. 4년 중임제 도입이나 이원정부제(분권형 대통령제) 도입, 의원내각제 도입 등이다. 중간선거 형식으로 대선을 치러 대통령의 권한을 견제하거나 총리와의 권한 분담으로 권력을 분산시키는 방안, 의회의 신임을 받은 총리가 내각을 구성함으로써 권력에 균형을 도모하자는 주장이다.
5년 단임제를 대신한 4년 중임제는 대선과 총선을 함께 치르고, 재선을 통해 장기적인 정부 정책을 펼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다만 8년 집권으로 대통령 권한이 더 비대해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두 번째 집권 때에 현재 5년 단임제처럼 레임덕이 반복될 우려도 있다. 또 다른 대안으로 꼽히는 분권형 대통령제(이원정부제)와 관련해선 국회가 이미 2009년과 2017년 각각 자문위원회와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개헌 논의는 이어온 바 있다. 당시 자문위원회는 제1안으로 이원정부제를 내세웠다. 대통령은 현행 그대로 5년 단임으로 하되, 국무총리는 국회(하원)에서 재적 과반으로 선출해 총리에게 국정 전반의 통할권과 내각 구성권, 국군통수권, 긴급재정경제명령권 등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정책 추진의 안정성이나 대통령과 총리의 파워게임, 국정 운영의 강력한 리더십 발휘가 어렵다는 점 등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헌법·정치학자들은 장기적으로 의원내각제를 지향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미 세계적으로 대통령제보다는 내각제가 선호되기 때문이다. 2022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대통령제는 한국을 포함해 7개국뿐이다. 이중 미국을 제외한 칠레, 멕시코, 코스타리카, 콜롬비아, 튀르키예 등은 권위주의 정권이나 내란, 쿠데타 등 사회적 분열과 내부 갈등을 겪었다. 이에 비해 내각제는 26개국에 달한다.
내각제 논의는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미 1990년 노태우 정부에서의 3당 합당, 1997년 김대중과 김종필의 연합 모두 내각제를 매개로 했다. 그러나 권력을 잡은 뒤에는 개헌에 대한 의지가 떨어지는 등 개헌 추진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다만 1987년 이후 현행 대통령제가 여러 번의 정치적 위기를 극복해온 안정적인 틀로 확인됐다는 반론도 있다. 이 때문에 ‘섣부른 개헌’은 경계해야 한다는 신중론도 있다. 우리나라 정치권이 가진 문제가 ‘권력 구조적 결함’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다.
여권, 尹 구속 이후 개헌론 분출
정치권에서는 본격적으로 개헌 논의가 펼쳐지는 분위기다.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 탄핵 심판 기간 여야가 헌법 개정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올해는 더 이상 성공할 수 없는 것으로 밝혀진 권력구조, 대통령제를 개선해야 한다”며 개헌론에 힘을 실었다.
여권의 차기 대선주자인 오세훈 서울시장은 역시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제 개헌을 논의합시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오 시장은 “한 지도자(윤석열 대통령)의 무모함으로 온 국민이 허탈감과 참담함을 마주하는 아침이자, 거대 야당의 힘을 정치인 1인(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생존본능을 위해 휘둘러도 막을 방법이 없는 아침”이라며 “지도자 리스크로 인한 혼란의 가능성을 최소화하도록 나라 운영 시스템을 완전히 개·보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오 시장은 “정부와 의회가 건전한 상호 견제로 균형 잡힌 국정을 추구하도록 통치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이제 민주당은 개헌 논의에 들어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조만간 개헌 특위를 구성해 논의를 시작하겠다”며 “대부분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불행한 일을 겪었는데, 이는 대통령 개인 문제라기보다는 제도 자체의 문제”라고 말했다. 권 위원장은 “개헌을 지지하는 분들과 연합해 개헌 여론을 형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여권에서는 “충격을 또 겪기 전에 대통령제를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로 바꾸고, 국회도 일당독점의 폐해를 막는 양원제로 개헌하자”(이철우 경북지사), “진영 논리와 구태 정치 극복을 위한 분권형 대통령제, 중선거구제로의 개헌이 필요하다”(김상욱 국민의힘 의원)는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야권 내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의 서울서부지법 난입 사태 이후 더불어민주당에서도 개헌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고개를 드는 분위기다. 민주당 중진 이춘석 의원은 한 매체에서 사회자가 서부지법 난입 사태의 재발 방지 대책을 묻자 “1987년 헌정 체제가 완벽하기를 기대했지만, 실제로 현실에서 부딪혀 보니 불안정한 체제라는 점을 확인했다”며 “민주주의를 지키기에는 불안정하다는 점에 대해 다 같이 마음을 터놓고 진지한 (개헌) 논의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답했다.
박범계 의원도 매체에 출연해 “지금 광장으로 나온 국민들의 요구인 ‘사회 대개혁’은 개헌을 통해 반영해야 한다”며 “특히 ‘대통령의 잘못된 판단과 실행이 역사를 몇십 년 뒤로 되돌릴 수 있다’는 교훈을 국민적 합의를 통해 헌법에 담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조기 대선 국면에서) 개헌도 필수적인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 역시 “이제는 87년 체제의 시효가 다했다”며 개헌을 통한 제7공화국 출범을 거론했다. 탄핵 정국에 이어질 정권교체기에 개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슈메이커 손보승 기자 rounders23@issuemak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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