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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로 드러난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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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suemaker 2025. 2. 6.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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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로 드러난 민낯

외면했던 문제가 할퀸 자국 선명히 남아
국토교통부, “사고 원인 투명하게 규명할 것”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는 국내에서 발생한 항공기 사고 중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낸 사고로 남게 됐다.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인 가운데, 이외 별개로 지방 공항과 저비용항공사(LCC)가 눈총을 받고 있다. 국토 면적이나 항공 수요 등을 고려하면 공항·항공사가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 때문이다.

ⓒPixabay


지방공항 경영난 안전 문제로 연결
항공정보포털시스템에 따르면 전국에는 17개 공항이 있다. 특수목적공항인 서울·정석공항을 제외하면 여객기가 이·착륙하는 공항은 15개다. 인천국제공항을 중심으로 김포와 김해, 제주, 대구, 청주, 무안 등 6개 지역에 거점공항이 있고, 주로 국내선 수요를 담당하는 지방 공항이 8개 더 있다. 이들 지방 공항은 대부분 경영 실적이 좋지 않은데, 국내 15개 공항 중 인천·김포·제주·김해공항을 제외한 11개(73.3%)가 적자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이번 참사가 발생한 무안국제공항 적자가 2023년 기준 253억 원으로 가장 크다. 양양국제공항(-211억 원), 울산공항(-195억 원), 여수공항(-189억 원), 포항경주공항(-163억 원), 청주국제공항(-122억 원)도 적자가 100억 원이 넘는다. 지방 공항은 최근 10년간 한 번도 흑자를 낸 적이 없는 공항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요인으로는 저출산과 고령화 추세 속 지방이 상대적으로 타격을 심하게 받으면서 인구 감소 추세가 지속하는 데다, 고속도로 신설 및 확장, KTX·GTX 운행 증가 등의 영향으로 국내선 항공 수요가 줄어든 것이 꼽힌다. 실제 무안국제공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을 받았던 2022년엔 활주로 활용률이 0.1%에 불과했다. 양양국제공항의 경우 지난해 일평균 항공기 운항 건수가 0.3편에 불과했다. 평균적으로 하루에 비행기가 한 대도 안 뜨는 셈이다.

국토 면적이나 항공 수요 등을 고려했을 때 국내에 지방 공항과 저비용항공사(LCC)가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Pixabay


  활주로가 비면서 지방 공항 경영난은 안전 문제와도 연결된다. 조류 퇴치 인력 4명이 일하는 무안국제공항은 제주항공 참사 당일 1명만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성 적자로 인력 운용에 부담을 느끼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처럼 적자가 쌓이고 있음에도 건설 중이거나 신규 건설을 추진하는 공항이 군공항과 사설공항 제외하고 추가로 10곳에 달한다. 당장 울릉공항이 2027년 준공하고, 가덕도신공항을 비롯해 대구경북통합신공항, 제주2공항, 백령공항, 흑산공항이 착공 예정이다. 이러한 공항 건설에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투입되는데, 특히 바다를 매립한 해상 공항 형태인 가덕도신공항의 경우 총사업비를 13조 7,000억 원으로 추산하는 초대형 사업이다. 대구경북통합신공항 사업비도 12조 9,000억 원으로 추정한다.

  호남권에선 새만금국제공항을 추진하고 수도권에선 경기도가 경기국제공항을 설립하기 위해 화성시와 평택시, 이천시 등 3곳을 후보지로 선정했다. 국제공항으로 추진 중인 서산공항은 제주도, 울릉도, 흑산도, 백령도 등 국내 4개 도서 지역만 운항이 가능할 것으로 국토교통부는 추정하고 있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시는 이와 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는 것이 희생자분들의 숭고한 넋을 기리기 위해 정부가 마땅히 이행해야 할 책무”라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LCC 공급 과잉론 제기
지방공항을 거점으로 하는 저비용항공사(LCC)도 논란이다. 항공사는 FSC(Full Service Carrier·풀서비스 항공사)와 LCC로 구분되는데, 이는 기내 서비스 제공 여부로 구분된다. LCC는 수하물과 기내식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유료화하는 방식으로 비용 경쟁력을 확보하고, 중·단거리 노선을 중심으로 짧게 자주 띄우는 방식으로 수익을 추구한다.

  LCC는 여행 산업의 트렌드를 바꿔놓았다고 평가받는다. 2005년 출범한 제주항공을 포함해 지난 20년은 국내 LCC의 성장기였다. 저렴한 항공권은 여행의 문턱을 낮추며 국내선 이용객은 LCC가 FSC를 앞지른 지 오래다. 글로벌 항공 데이터 분석기관 OAG에 따르면 ‘김포-제주’ 노선은 2024년 기준 하루 약 39,000명이 이용하는 세계에서 가장 바쁜 항공 노선 1위다. 2023년에는 국제선 탑승객 수도 LCC가 FSC를 제쳤다. 특히 제주항공은 2023년 창사 이래 최초로 상반기 매출 1조원을 달성하며 LCC 전성시대를 이끌어왔다.

정부는 이번 참사의 후속 대책으로 항공 분야 전반의 안전 체계 혁신에 나설 방침이다. ⓒ기획재정부


  국내에는 제주항공을 비롯해 LCC가 9개에 달한다. 미국과 더불어 LCC가 세계에서 가장 많다. 지역 정치권에선 선거철마다 특정 항공사 본사를 특정 지역에 유치하겠다는 공약이 나온다. 이러한 항공사 난립이 결국 안전에 영향을 미친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운항할 수 있는 항공 노선이 정해진 상황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항공사가 수익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결국 여객기 운항을 늘리고 가격을 낮추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에 사고가 발생한 제주항공 7C2216편은 사고 직전 48시간 동안 무안과 제주, 인천공항, 태국 방콕, 일본 나가사키 등을 오가며 13차례 운항한 것으로 알려졌다.

  운행이 가능하다고 해도 정비는 필수다. 국토교통부는 비행기 한 대당 정비 인력이 12명은 되어야 한다고 권고하는데, 이를 충족한 국내 LCC는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 두 곳뿐이다. 항공안전백서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국내 12개 항공사 정비사는 총 5,849명인데, 이 중 4,248명(72.6%)이 FSC 소속이다. LCC 소속 정비사는 1,601명뿐이다. 다음 이륙을 준비하기 위한 정비 역시 최소 요구 수준인 28분을 빠듯하게 지키는 것으로 알려진다.

사고 원인이 밝혀지는 데는 6개월 이상 소요될 전망이다. 이에 앞서 제기된 문제들을 성실히 풀어나가며 사회적 불안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 ⓒ광주광역시


  한편 정부는 이번 참사의 후속 대책으로 항공 분야 전반의 안전 체계 혁신에 나선다. 먼저 전국 공항에 대한 특별안전 점검을 거쳐 시설 개선 계획을 세울 방침이다. 이번 사고 피해를 키운 것으로 지목된 무안국제공항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이 설치된 ‘콘크리트 둔덕’처럼 항공기 안전을 위협하는 구조물은 철거하거나 재시공을 검토한다.

  둔덕이 2m 높이였던 무안공항 외에도 여수공항(4m), 포항경주공항(2m), 광주공항(1.5m) 등 최소 3곳의 전국 공항에는 콘크리트와 흙으로 만들어진 둔덕 위에 로컬라이저가 세워져 있다. 무안공항의 둔덕이 설치 및 개량되는 과정에서 위반 논란이 제기된 공항 건설·운영 지침은 검토를 거쳐 올해 상반기 내에 부족한 점을 개정한다는 방침이다. 또 전국 공항의 18개 관제 시설에 대한 특별 안전 점검을 통해 관제사 인력난 등의 문제를 살핀다. LCC를 포함한 항공사들이 정비를 철저히 하고 있는지 종합 안전 점검도 실시한다.

  국토부는 공항과 항공사 등 분야별 안전 점검 결과를 바탕으로 4월까지 항공 안전 혁신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사고 유가족을 위해서는 생활·의료 지원, 추모사업 등을 포함한 특별법 제정을 추진한다. 사고 조사 과정에서는 단계마다 조사 결과를 유족에게 공개한다. 사고조사위원회 조사의 객관성과 활동의 독립성을 높이기 위해 조직·인적 구성 개편을 포함한 법률 개정 등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 유가족 지원, 사고 조사 등 과정을 매뉴얼로 남기기 위한 백서 발간도 준비한다.

이슈메이커 손보승 기자 rounders23@issuemak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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