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노이드’에 국내 기업도 대응 속도
중국 기업 약진과 일본 기업 부활 두드러져
올 한 해 산업계의 기술 흐름을 짚어보고 미래를 관통할 트렌드를 읽을 수 있는 세계 최대 전자·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5’가 올해 1월에도 어김없이 열렸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지난해 전면 배치된 인공지능(AI)이 단순한 소개를 넘어 일상으로 깊숙이 들어왔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AI는 이제 대부분의 영역에서 없어서는 안 될 기본요소로 진화했으며, 향후 로봇과 결합해 휴머노이드 로봇 시대가 올 것임을 예고했다.
‘RTX 50’와 ‘코스모스’ 출시 알린 엔비디아
이번 CES 2025의 하이라이트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책임자(CEO)의 발표였다. 2017년 이후 8년 만에 CES에 참석한 황 CEO의 발언은 행사 기간 내내 화제였다. 황 CEO는 기조연설에서 차세대 그래픽처리장치(GPU) 지포스 ‘RTX 50’ 시리즈와 로봇·자율주행 AI 개발 플랫폼 ‘코스모스’의 출시 소식을 알렸다. 코스모스는 자율주행과 로봇이 인간과 같은 수준의 지능을 갖추기 위해 필요한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할 수 있게 하는 플랫폼이다.
이미 엔비디아는 10여 년 전 AI 칩과 함께 엔비디아의 제품에서만 구동하는 AI 개발 플랫폼 ‘쿠다’를 발표하며 관련 생태계를 구축하고 시장을 이끌었다. 이번에는 로봇과 자율주행이라는 ‘피지컬 AI’를 화두로 개발 플랫폼을 이용해 미래 로봇 시장을 주도하겠다는 전략이다. 황 CEO는 “로봇을 위한 챗GPT의 모먼트가 다가오고 있다”며 “챗GPT가 AI 시대를 연 것처럼 조만간 피지컬 AI 시대도 다가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제시한 ‘피지컬 AI’는 인공지능 발전 단계 중 네 번째 단계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텍스트와 이미지 같은 데이터를 이해하고 처리하는 ‘인식 AI’, 데이터에서 패턴을 파악해 콘텐츠를 생성할 수 있는 ‘생성형 AI’, 사람의 개입 없이 특정 작업을 자율 수행하는 ‘에이전트 AI’를 거쳐, 물리 법칙까지 이해하는 ‘피지컬 AI’ 시대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피지컬 AI는 인터넷과 피시(PC), 스마트폰을 벗어난 인공지능이란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물리 법칙을 이해한다는 건 단순히 인공지능과 대화를 나누는 수준을 넘어 현실 세계에서 AI에게 작업을 시킬 수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차를 비롯해 공장 생산 라인에 배치할 수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 등이 대표적인 예다. 다양한 물리기기에 탑재된 피지컬 AI가 향후 제조와 물류, 건설, 농업과 식품, 의료 등 사실상 모든 산업에 활용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일거수일투족 눈길 끈 젠슨 황
황 CEO는 이처럼 이번 행사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가 피지컬 AI 시대를 강조하자 국내 기업들의 대응도 빨라지고 있다.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은 이번 CES 기간 “휴머노이드 계획이 빨라질 것 같다”며 “우리도 휴머노이드까지 같이 간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AI 집사 로봇 ‘볼리’의 상반기 출시 계획을 공식화했다. 조주완 LG전자 CEO도 현재 진행 중인 식음료, 물류 외에 가사 휴머노이드 등의 콘셉트로 집 영역에서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넘어 피지컬 AI 분야에서 엔비디아와의 협업 가능성을 암시하기도 했다.
황 CEO의 한마디에 가슴을 졸이고, 어느 기업은 힘을 내기도 했다. 그가 글로벌 기자간담회에서 자사의 새로운 게임용 그래픽처리장치(GPU) ‘지포스 RTX 50시리즈’에 삼성전자의 메모리칩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답변했다가 하루 만에 이를 번복하는 일이 있었다. 황 CEO는 해당 제품에 “삼성을 시작으로, 다양한 파트너사의 그래픽 전용 메모리(GDDR7) 제품이 들어간다”고 이례적인 성명을 내 논란의 불씨를 껐다. 황 CEO는 당초 우리 기업들이 그래픽 전용 메모리를 생산할 능력이 있는 줄 몰랐던 것으로 전해져 논란은 더욱 크게 번졌다.
양자(퀀텀)컴퓨터 분야에서 활약하는 기업들도 황 CEO의 한마디로 찬물을 맞았다. 황 CEO는 현지에서 열린 월가 분석가들과의 간담회에서 “정말로 유용한 양자컴퓨터가 나오려면 앞으로 20년은 걸린다”고 말했다. 개발 초기 단계에 놓인 양자컴퓨터가 우리 생활에서 제대로 쓰이려면 모두가 기대하는 것보다 시간이 훨씬 많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것이다. 그의 발언 후 CES 2025 현장에선 양자컴퓨터에 대한 관심이 대폭 줄었다. 양자역학의 원리를 기반으로 한 양자컴퓨터는 기존 컴퓨터보다 훨씬 더 많은 계산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어 인간이 풀지 못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는 기대감에 주목받아 왔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빅테크들까지 나서 개발하려 하면서 이목은 더욱 집중됐다. 하지만 그 가능성에 황 CEO가 선을 그으면서 뜨거웠던 분위기는 냉랭해졌다.
스마트홈 경쟁 본격화하는 삼성과 LG
미국소비자기술협회(CTA)에 따르면 이번 CES 2025에는 총 14만 1,000명 이상이 방문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보다 약 5% 늘어난 수준이다. 참가기업 수는 4,500여개로, 미국이 약 1,500개로 가장 많았고 우리나라도 역대 처음으로 대기업과 스타트업 등 1,000개가 넘는 기업이 참가했다.
국내 양대 전자 업체인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한층 더 고도화된 인공지능 기술을 기반으로 그간 강조해온 스마트홈을 초개인화된 경험을 선보이는 공간으로 진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 삼성전자는 스마트싱스를 기반으로 가족이 원하는 맞춤형 집을 제안하는 ‘홈 AI’를 제시했다. 아울러 매장과 사무실 등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비즈니스 솔루션 ‘스마트싱스 프로’와 집에서 차를 제어하거나 귀가 전 차에서 집 내부를 케어할 수 있는 기술도 소개했다.
LG전자는 AI의 개념을 ‘공감지능’으로 확대해 차별화를 꾀했다. 기술혁신을 기반으로 고객의 다양한 경험과 공간을 연결 및 확장하며 일상을 변화시키는 미래를 제시한다는 전략을 내세웠다. 이를 위해 이번 행사에서 생성형 AI를 탑재한 AI홈 허브 ‘LG 씽큐 온’과 이동형 AI홈 허브 ‘Q9’을 선보였다. 또한 차량, 상업용 공간 등으로 AI 경험을 확대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MS)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는다고 발표했다. 향후 양사는 고객을 이해하고 상호작용할 뿐 아니라 고객의 필요와 선호도까지 예측하는 AI 에이전트를 개발할 계획이다.
이번 CES에서는 중국 기업의 약진과 일본 기업의 부활도 두드러졌다. 전시관 메인 자리에 큰 부스를 차린 중국 TCL과 하이센스는 각각 차세대 퀀텀(QD)-미니 LED TV인 ‘QM6K TV’ 시리즈와 116인치 트라이크로마 LED TV 등 신제품을 대거 선보였다. 특히 TCL은 AI 로봇 ‘에이미’를 처음 공개하며 화제를 모았다. TCL은 에이미에 대해 “가족과의 의미 있는 순간을 포착하고 보존한다”며 “집을 편안한 공간으로 만들고 집안을 순찰하며 사용자의 습관에 적용해 개인화된 대화형 경험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세계 1위 로봇청소기 업체인 로보락의 로봇팔을 탑재한 로봇청소기 ‘사로스 Z70’도 주목받았다. 이 제품은 5축 접이식 로봇팔인 ‘옴니그립’이 장착된 최첨단 로봇청소기다. 옴니그립은 정밀 센서, 카메라,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등이 적용돼 물체의 위치와 주변 환경을 비롯 들어 올린 물체의 무게까지 정확히 감지한다. 이를 통해 집안을 청소하다가 근처에 치워야 할 물건이 있으면 집게를 꺼내 다른 곳으로 옮긴다. 로봇청소기가 바닥을 쓸고 닦는 것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도 치운다는 역발상이다.
한편 ‘CES 2025′에서 한국 기업 152개사는 210개의 혁신상을 수상했다. 이는 한국의 역대 최다 수상 실적으로, 국가 기준 전 세계 1위의 성과로 CES 2025에서 발표한 혁신상 전체 458개의 약 46%에 달하는 규모다.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CES 2025 K-스타트업 통합관 참여기업 및 혁신상 수상기업 간담회’ 자리에서 “CES 2025에서의 우리 벤처·창업기업의 선전은 한국이 미래 시장을 선도할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다”며 “앞으로도 ‘K-스타트업’들이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이슈메이커 손보승 기자 rounders23@issuemak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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