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파괴 아파트, 이제 사라진다
관리비 절감 기대 속 분양가 상승 우려
정부가 내년부터 30가구 이상 민간 공동주택(아파트)에 대해 ‘제로 에너지 건축물(ZEB, Zero Energy Building) 인증’ 의무화를 도입한다. 당초 올해부터 시행하기로 했으나 공사비 인상 등을 우려하여 종전보다 기준을 완화하고 내년 6월부터 시행하기로 유예했다. 그러나 명확한 세부 지침이 미비하고 공사비 폭등으로 인한 분양가 상승으로 소비자 부담이 커진다는 우려로 인해 건설업계의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모호한 규제 기준으로 혼란 가중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탄소배출’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이슈이다. 이에 정부는 2020년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2018년 기준 대비 40% 감축하기로 국제사회와 약속했다. 이러한 상황은 건설업계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총 탄소 배출량의 4분의 1가량은 건축물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정부는 ZEB 인증 의무화를 통해 친환경 건축물을 늘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제로 에너지 건축은 건물에서 사용하는 최종 에너지소비를 ‘0(에너지자립률 100% 이상)’으로 구현하는 ‘탄소중립’ 핵심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자립률에 따라 최고 1등급(100% 이상)에서 5등급(20% 이상 40% 미만)까지 나뉜다. 건축물이 에너지소비의 주요 분야로 지목되며 신규 건축물에 대한 ZEB 인증이 세계적으로 확산하면서 한국 정부도 로드맵을 수립했고, 현재 공공건축물을 중심으로 ZEB 인증제를 시행하고 내년에는 민간건축물로 확대된다.
국토교통부 기준에 의하면 ZEB 성능 기준은 ‘5등급’에서 ‘5등급 수준’으로 다소 완화된 상태다. 인증 등급을 충족을 위해 아파트 현관문과 창호, 단열재 등의 성능을 높임으로써 에너지를 절감해야 한다. 태양광·지열·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설비도 설치해 에너지자립률을 높여야 한다. 실제 ZEB로 인한 에너지 절감 효과는 확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에너지자립률 23.37%의 국내 첫 제로 에너지 아파트인 인천시 ‘힐스테이트레이크송도’ 공동주택관리 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21년 12월 기준 해당 단지 1㎡당 관리비는 1,154원 수준으로 입주 시기가 비슷한 인근 아파트 관리비 대비 33% 이상 저렴했다.
문제는 ZEB 인증 의무화의 가장 큰 문제로 꼽히는 분양가 인상이다. 국토부는 ZEB 성능 강화에 따라 전용 84㎡ 기준 가구당 약 130만 원의 건축비용이 추가될 것으로 전망했으나, 업계는 5등급 수준의 인증 기준을 맞추려면 가구당 약 293만 원 이상의 공사비가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국토부 추산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이로 인해 분양가가 추가 인상된다면 서울과 지방 분양시장의 양극화는 걷잡을 수 없이 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소비자들이 에너지 사용료를 절감할 수 있다는 기대가 커졌으나 이면에는 실제 이익에는 기여하지 못할 거라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처럼 코로나19 팬데믹와 유럽-중동 전쟁으로 건설 주요 자재인 시멘트와 레미콘 가격이 줄줄이 오르면서 신축아파트 분양가가 급등한 상황을 주목해야 한다.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주요 건자재 가격이 크게 올라 시멘트 가격은 42.1%, 골재와 레미콘은 각각 36.5%, 32.0% 뛰었다. 같은 기간 인건비는 15.8% 인상됐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KICT)에 의하면 지난 3월 공사에 투입되는 재료와 노무, 장비 등의 가격변동을 나타내는 건설공사비지수(잠정)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2.4% 상승한 154.85를 기록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토부가 발표한 기본형건축비도 지난해 1월(1.1%) 3월(2.05%) 9월(1.7%) 세 차례 상승했다.
인센티브 다소 부족하다는 지적
천정부지로 오르는 공사비에 타격을 받는 건 다름 아닌 분양 소비자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조사 결과 지난 4월 민간 아파트 분양가는 ㎡당 평균 563만 3,000원으로 1년 만에 17%대 상승했다. 물가상승률의 6배에 달한다. 서울 아파트 분양가는 ㎡당 평균 1,149만 8,000원으로 같은 기간 약 24% 상승했다.
여기에 제로 에너지 건축물 인증이 의무화되면 공사비 상승을 더욱 부추길 것으로 전망된다. 단열 성능과 신재생에너지 활용도를 높인 새로운 건축기준이 도입되면 사업 승인을 신청하는 민간 아파트는 에너지자립률을 20% 이상 갖춰야 한다. 시멘트 업체들의 가격 인상도 지속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2050년 국가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려면 시멘트 제조 단계에서 탄소배출 경감을 위한 전방위 투자가 필요해서다.
정부의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맞춰 2050년 모든 신축 건축물은 제로에너지 1등급을 달성해야 한다. 이때 시장 규모는 180조 4,000억 원까지 성장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그렇지만 이는 목표 달성을 가정한 결과일 뿐 지금 상태의 제로 에너지 건축물 인센티브를 유지한다면 현실화 가능성은 작다는 것이 중론이다. 제로 에너지 건축물 1등급 인증을 위해서는 기존 공사비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공사비 투입이 필요하다. 이에 정부는 기업에 각종 인센티브 혜택을 제공한다. 제로 에너지 건축물 인센티브는 용적률(대지면적 대비 건축물 연면적 비율) 등 건축기준 완화, 금융(대출), 기부채납 등 지원, 신재생에너지 설치 보조금 지원, 세제 혜택 등이 있다.
제도의 성공적인 실행을 위해서는 인증을 받은 아파트 단지에 한해 정부가 실질적인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김영덕 선임연구위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ZEB 인증 의무화에 대한 정부의 로드맵 구축 및 이행은 필수적이지만 특정 기술만 인증해 주는 등 제도적 문제는 개선이 필요하다”며 “실질적으로 에너지를 얼마나 저감하는지에 대한 평가가 우선”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 위원은 “ZEB 인증을 위해서는 기술 적용뿐만 아니라 관리 시스템 또한 필요하고 이로 인한 공사비 인상은 분명하다”면서 “세제 혜택, 용적률의 공격적인 인상 등 이를 상쇄할 정도의 실질적이고 공격적인 인센티브 운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에너지 소비량을 줄이려는 목적이 결국 건축 부문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것인 만큼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건설사들의 역할과 책임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2월 건설산업연구원이 발간한 ‘국내 건설기업의 성공적 탈탄소경영 추진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건설산업이 전 세계 온실가스의 약 25%를 배출한다. 특히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37%가량이 건설산업에서 나온다. 특히 건축물 운영단계의 배출량이 65% 내외를 차지한다. 건축물 자체의 에너지소비를 줄이는 과제가 건축 부문 탄소중립 목표 달성 과정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한편 건설 기자재 시장의 성장세는 주목할 부분이다. 제로 에너지건축은 기본적으로 고효율 단열시스템과 고성능 창호시스템 등 열이 바깥쪽으로 나가지 않도록 하는 ‘패시브(Passive)’ 기술이 70% 정도를 차지한다. 여기에 태양광 및 지열 등 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에너지를 생산하는 ‘액티브(Active)’ 기술 30%가 결합하면 완전한 제로 에너지건축물을 구현하게 된다.
여기서 패시브에는 창호와 단열재가 주요 자재로 쓰이는데, 이 중 고성능 창문은 복층유리를 사용해 공기의 유입을 차단하거나 유리에 특수한 코팅을 입혀 일사의 유입을 막는다. 단열재는 건물 구조체의 내·외부에 설치해 건물의 열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쓰인다. 패시브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고단열과 고기밀 벽체, 고성능 창호 등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그래서 관련 업계에서는 창호 관련 제품을 본격적으로 개발·적용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중이다. 가장 손쉽게 제로 에너지건축을 구축할 수 있는 창호에 먼저 눈이 가게 되는데 이런 부분에서 PVC 창호가 열전도율이 낮아 많이 쓰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슈메이커 손보승 기자 rounders23@issuemak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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