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의 주요 흐름 바꾸기도 하는 ‘오보’
지난 4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건강 이상설’과 ‘사망설’이 제기되며 세계 외교가는 3주간 혼란의 시기를 보냈다. 김 위원장이 4월15일 태양절 행사에 모습을 보이지 않아 촉발된 각종 의혹과 추측들은 5월2일 공개 활동을 통해 그가 건재함을 과시하면서 종식되었다.
‘김씨 일가’ 둘러싼 뿌리 깊은 오보의 역사
김정은 위원장은 6년 전인 2014년에도 40일 정도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서 확인되지 않은 각종 ‘지라시’가 돌기도 했다. 이처럼 북한 ‘김씨 일가’의 신변을 둘러싼 ‘루머’들은 잊을 만하면 나오는 단골 메뉴이기도 하다.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두문불출 행보를 보일 때도 신변 이상설이 자주 제기되었다. 2004년 11월에는 여의도 증권가를 중심으로 ‘김 위원장이 매제인 장성택 노동당 제1부부장의 아들이 쏜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는 설’이 돌고 있다고 국내 여러 매체가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이 ‘오보’ 혹은 ‘가짜뉴스’였다.
가장 대표적인 오보는 1986년 국내 유력 일간지의 ‘김일성 주석 피살’이다. 당시 해당 매체는 11월16일 “북한 김일성이 암살되었다는 소문이 15일 나돌아 동경 외교가를 한동안 긴장시켰다”고 보도한 뒤, 다음날 호외를 통해 “북괴 김일성이 총 맞아 피살됐거나 심각한 사고가 발생, 그의 사망이 확실시 된다”고 이를 공식화했다. ‘특종’을 국내 다른 언론에서도 뒤질세라 대서특필하고 외신들도 인용하면서 일파만파 번졌지만 채 72시간이 되지 않아 북한 중앙통신이 “김일성 동지가 평양공항에서 몽고인민공화국 국가주석 바트문흐 동지를 따뜻이 영접했다”고 전하면서 오보로 결론이 났다.
이처럼 북한 오보의 역사는 뿌리가 깊다. 2013년 8월 국내 언론이 ‘가수 현송월을 포함해 북한 유명 예술인 10여명이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를 어기고 음란물을 제작·판매한 혐의로 공개 총살됐다’고 보도했지만 현송월은 이듬해 5월 조선중앙TV에 모습을 드러냈다. 2015년에는 CNN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고모부인 장성택에 이어 고모 김경희도 독살했다’고 전했지만 김경희 전 노동당 비서는 올해 1월 조선중앙통신에 재등장한 바 있다.
북한 관련 오보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특유의 폐쇄성 때문에 취재원 확보가 어렵고, 정보의 사실 확인에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신뢰할 수 없는 ‘소식통’을 근거로 한 뉴스를 경계하고, 해외 매체를 단순 인용하는 일을 삼가야 한다고 말한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은 “북한 관련 오보의 역사는 30년 넘게 계속돼 왔다”면서 “검증이 어렵다면 최소한 정보원이라도 밝혀야 오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독일 통일의 중요한 계기가 된 ‘실수’와 ‘오보’
오보는 때로는 역사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1945년 12월27일 동아일보는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소련이 38선 분할 점령을 위해 신탁통치를 주장하고 미국은 한국의 즉시 독립을 주장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지면에 실었다. 실제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 신탁통치를 강하게 주장한 것은 미국이고, 소련은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쪽이었지만 정반대로 보도한 것이다.
동아일보 보도는 반탁운동을 일으키는 촉매제가 되었다. 반탁을 제2의 독립운동으로 규정했던 이승만 진영은 물론이고 김구의 임시정부 진영도 신탁반대 국민총동원위원회를 설치하고 국민 총파업을 단행하게 된다. 이는 해방정국에서 대립과 갈등 전선이 형성되며 정작 중요한 쟁점인 통일정부 수립과 친일파 청산 문제 등이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계사의 획기적 전환점이 된 독일 통일의 중요한 계기도 한 이탈리아 기자의 오보에서 시작되었다. 1989년 11월9일 동독의 정치국원이자 정부대변인이었던 귄터 샤보프스키는 시민들의 반정부 시위 혼란을 잠재우기 위한 ‘여행완화법안’에 대한 보충 설명 자리에서 정책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언론 앞에 서며 대형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이탈리아 민영통신사 안사의 특파원이었던 리카르도 에르만이 “언제부터 국경개방이 시행되느냐”는 질문에 ‘지연 없이 즉시’라고 답했고, 에르만 기자는 이를 ‘베를린 장벽 철거’로 판단해 보도하게 된다. 실제로 동독 정부가 내놓은 것은 여행 조건을 일부 완화하는 것이라 사정을 잘 아는 현지 언론들은 기자회견 내용을 중시하지 않았지만 잘못된 말에 근거한 오보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며 독일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만들며 베를린 장벽 붕괴로 이어졌다.
이처럼 고의적이건 실수이건 오보는 역사의 물줄기를 일거에 바꿔버린다. 하지만 현재는 보다 책임 있는 자세로 특종보다 오보를 줄이기 위한 차분하고 이성적인 접근이 필요한 시대이다. “반복되는 오보는 실수가 아니다”는 말도 있듯이 사실만을 보도하고, 이에 기초해 진실을 밝히는 언론의 기본적인 역할을 다시금 되돌아 볼 때다.
이슈메이커 손보승 기자 rounders23@issuemak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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