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선, 김현정 범표원두 대표(좌 윤기선 대표/우 김현정 대표)
사진=김남근 기자
- 대한민국 수제캔커피 1세대
- 고객이 증명해주는 범표원두의 고집과 철학
일상에 지친 바쁜 현대인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곳인 카페. 동네 어귀 어디를 가든 기분 좋은 향과 잔잔한 음악을 선사하며 지친 이들에게는 삶의 활력을, 바쁜 이들에게는 편안한 공간을 제공한다. 지나간 시간 속 추억을 공유하는 특별한 공간이자 사람들의 정(情)이 자리 잡은 카페에서 특별한 꿈을 꾸는 이들이 있다. 기억에 남을 커피 한잔을 통해 행복한 일생의 꿈을 실현해나가고 있는 작지만 큰 기업, 범표원두를 이슈메이커가 조명해보았다.
범표원두는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전문가의 커피 맛 구현’이라는 신념을 바탕으로 변함없이 변화하며 성장해가고 있다.
ⓒ 범표원두
커피와의 인연이 궁금합니다.
(김현정 대표) “반갑습니다. 올해로 커피와 20년 지기가 된 범표원두의 대표 김현정입니다. 커피와 인연을 맺기 전 저는 외국어학원에 근무하는 평범한 회사원이었어요.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며 나름 인정받는 위치에 오르기도 했지만, 돌연 커피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명료했습니다. 저 자신의 미래에 대한 명확한 설계가 필요했고, 원하는 답을 직장생활에서 찾지 못했었어요. 고민이 깊어져 가던 차 마침 부모님께서 창업을 제안하셨고, 제 짝인 윤기선 대표님과 함께 카페창업을 고민하여 시작하게 됐습니다”
(윤기선 대표) “김 대표님께서 카페 창업을 제안했을 당시 저는 커피에 대해서는 문외한(門外漢)에 가까웠습니다. 인스턴트커피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인 줄 알았을 정도였죠. 물론 지금도 인스턴트커피가 매우 훌륭한 커피임을 인정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인지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의미입니다,(웃음) 와이프가 먼저 카페를 오픈하고 자리를 잡을 때까지 저는 조력자 역할을 담당했어요. 시간이 흐르며 점차 원두 시장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의 어떠한 부조리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이 시장을 쉽게 생각하고 접근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원두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로스터기로 직접 로스팅을 할 수 있을 수준까지 준비한 뒤 본격적으로 카페 사업에 동참하게 됐습니다”
처음 시작이 범표원두가 아니라고 들었어요.
(윤 대표) “그렇습니다. 첫 브랜드는 스페인어로 ‘일생’이라는 뜻을 가진 ‘LAVIDA’였습니다. 대학가 앞에 자리 잡고 해당 지역에서 맛집으로 소문이 났어요. ‘전수창업’을 할 정도로 장사도 잘됐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됩니다. ‘너희 카페 이름이 뭐였지? 람바다였나?’”
(김 대표) “브랜드에 큰 자부심이 있었기에 지인의 말은 충격이었어요. 하지만 뒤돌아 생각해 보니 우리만 기억하는 브랜드가 아닌, 모두가 기억하는 브랜드를 만들었어야 했다는 깨달음이 생겼습니다. 어느 정도 자리 잡았다고 생각했던 브랜드였지만, 이때를 기점으로 우리의 고민은 다시 백지상태로 돌아가게 됐어요”
브랜드 범표원두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나요?
(윤 대표) “리브랜딩 과정에서 많은 부분을 고려했습니다. 브랜드 네이밍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카페 사업을 왜 시작했는지에 대한 본질부터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진취적인 미래를 설계하고, 가족들과의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자 시작했던 창업이었기에, 저녁이 보장된 업무 사이클을 갖추고자 했습니다. 브랜드는 가장 한국적이기를 바랬고, 누구에게나 쉽게 각인되는 것도 원했습니다. 그러던 중 문득 호랑이가 눈에 들어왔어요. 그래서 조사를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호랑이를 지칭하는 말인 ‘범’이 순수 한글이라는 것도 알게 됐죠. 마음에 와닿았고, 그 즉시 구체화를 시작했습니다. 원두에 대한 전문성을 띠고, 신뢰도를 높이고자 ‘범표원두’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로 결정했어요”
(김 대표) “브랜드 이름은 결정했지만, 이름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담은 심볼로 대중에게 브랜드를 각인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죠. 평소 알고 지내던 디자인 회사의 대표님께 이러한 고민을 털어놓았고, 너무나 감사하게도 흔쾌히 제작해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윤 대표님의 특징인 모히칸 헤어스타일과 수염, 그리고 선글라스에 호랑이의 형상을 의인화해주셨어요. 심볼을 보는 순간 더 이상의 고민은 필요 없었습니다. 범표원두의 정체성을 한눈에 볼 수 있었기에 즉시 결정하고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대한민국 수제캔커피 1세대인 범표원두는 코로나 팬데믹 당시 ‘주문 폭탄’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믿기지 않는 경험을 하게 된다.
ⓒ 범표원두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김 대표)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한양으로 보내라’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범표원두의 시작을 위해 한양으로 향했죠. 고심 끝에 역삼동에 자리를 잡았고, 테일러숍이었던 자리에 간단한 보수만 진행해 콘셉트를 유지하며 영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마음은 들떠있었지만, 매출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었는데도 말이죠. 그렇게 둘만의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이했습니다”
(윤 대표) “무언가 대단히 크게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인을 분석하고 또 분석했습니다. 하지만 쉽게 답은 나오지 않았죠. 그러다 문득 메뉴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메리카노, 라테, 에스프레소와 같은 이름이 아닌 콜롬바이, 브라질, 에디오피아 등 원산지를 메뉴 이름으로 적어놓은 것이 보였어요. ‘아차’ 싶었습니다. 급한 마음에 A4용지에 손글씨로 ‘아메리카노 3천 원’이라고 적어 쇼윈도에 붙였습니다. 그제야 손님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이후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김 대표) “그동안 ‘LAVIDA’에서 시도했던 다양한 제품들이 빛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상권이 바뀌며 고객들의 취향도 달라졌죠. 대학가에서 인기가 많지 않았던 산미 있는 원두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드립백, 캡슐 등 다양한 제품이 판매되기 시작했어요. 근처 직장인들은 물론 마니아층에도 소문이 나며 매출은 상승곡선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코로나 팬데믹이 찾아왔습니다”
큰 타격을 입게 되었나요?
(윤 대표) “위기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아주 큰 기회가 만들어지기도 했어요. 코로나-19가 발발하기 전부터 실링캔에 관심이 많았었습니다. 국내에 캔으로 포장된 원두커피가 없던 시기였죠. 직접 배달을 하며 느꼈던 경험을 토대로 중국산 캔시머를 구매해 제작하며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지만, 실링캔커피(수제캔커피)에 대한 비전을 확신했기에 포기하지 않고 수소문을 한 끝에 국내에서 완성도 높은 캔시머를 개발한 기업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유기적인 협조와 이해로 캔시머를 도입하게 됐고, 마침 이 시기에 코로나-19사태가 터지게 된 것입니다”
(김 대표)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해 매장 포스기를 켰는데, 느닷없이 배달 주문이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주문 전표가 바닥까지 길게 늘어질 정도였죠. ‘기계 오류인가?’ 싶어 기다려 보았는데, 멈추지 않고 주문이 계속되어 ‘아, 진짜 주문이구나!’라고 인지한 뒤 정신없이 커피를 만들었습니다. 주문의 대부분은 수제캔커피였어요. 그렇게 며칠이 지나도록 주문은 멈추지 않았고, 결국 배달 앱 담당자분을 호출해 주문을 막아놓는 상황에 이르게 됐어요. 정신을 차린 뒤 상황을 알아보니, 해당 지역 ‘맘카페’에 범표원두의 수제캔커피 중 하나이자 대표적인 메뉴인 '범표라떼'가 소문이 난 것이었어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외출이 어려웠던 시기에 맛 좋은 수제캔커피가 그들의 니즈를 충족시킨 것입니다. 그렇게 올라간 주문량은 내려오지 않았고, 결국 이를 계기로 큰 결단을 내리게 됩니다”
어떤 결단인가요?
(윤 대표) “로스팅 공장의 확장 이전이라는 큰 결정이었습니다. 당시 배달 주문이 많아지자, 카페 안은 배달 기사님들로 가득하게 되었어요. 직접 찾아오시는 손님들이 당황하시며 발걸음을 돌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죠. 지금의 범표원두를 있게 해주고, 앞으로도 존재하게 해줄 분들은 바로 직접 찾아와 주시는 분들인데도 말이죠. 이에 더해 주문량이 늘어나며 원두에 대한 수요도 높아졌습니다. 작은 카페의 한켠에서 감당할 만한 수준이 아니게 된 것이죠. 결국 고객들의 니즈를 충족하고, 저와 범표원두 직원들이 보다 좋은 환경에서 체계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함을 직시해 구리시로 로스팅 공장을 확장하게 됐고, HACCP 인증도 취득하게 됐습니다”
이전 후 많은 것이 바뀌었을 것 같습니다.
(김 대표) “그동안 미뤄왔던 숙제들을 해내는 느낌이 들었어요. 여러 번 제안이 왔었던 백화점 팝업 행사를 진행할 수 있었고, 카카오선물하기 입점, 범표원두 3호점 오픈, 카페쇼 참가, 납품처 확장, 강연, 그리고 대한민국의 상징 중 하나인 덕수궁과 경복궁, 창경궁에도 원두 납품을 하게 되는 등 정말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사업 확장 및 안정화를 통해 사랑하는 가족들과 시간도 가질 수 있는 조금의 여유가 생기게 되었어요(웃음)”
범표원두는 로스팅 공장의 확장 이전 후 원두납품(OEM/B2B), 백화점 팝업, 강연 등 통해 활동의 영역을 넓히며 경쟁력을 높여나가고 있다.
ⓒ 범표원두
두 분의 힘만으로 이렇게 빠른 성장은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윤 대표) “현재 범표원두의 사훈은 ‘변함없이 변화하는’입니다. 원두의 퀼리티와 맛의 기준을 변함없이 유지하고, 고객의 니즈에 맞는 제품을 생산해 서비스를 보완하며, 동시대성에 발맞춰 변화하고자 했습니다. 원두를 기반으로 한 범표원두의 다양한 제품라인을 연구·개발해 자사제품들을 출시하며 기업으로서의 성장도 함께 이뤄냈습니다. 무엇보다 범표원두의 대표 시그니처 음료인 범표라떼를 기점으로 매출의 수직상승을 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러한 범표원두의 사훈을 구성원 모두가 고수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김 대표) “범표원두를 사랑해주시는 고객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범표원두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기억에 남을 커피 한잔을 위해 노력했던 시간이 쌓이고 쌓여 고객분들과의 소중한 인연으로 발전하게 됐고, 그렇게 20여 년이 흐른 지금은 그들이 범표원두의 존재 이유이자 범표원두의 가치를 증명해주는 이들이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올해는 더욱 바쁜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각오가 궁금합니다.
(윤 대표) “저희 부부가 가끔 주고받는 문구가 있습니다. ‘커피 하길 잘했다’라는 문구에요. 커피는 마음을 전하고 성의를 표하는, 나아가 마음의 안정과 휴식을 위한 ‘쉼표’와도 같은 기능을 갖고 있어요. 그리고 커피라는 매개를 통해 사람들과의 진정성 있는 소통이 가능했지요. 이러한 기능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에 더욱 막중한 책임감으로 완벽한 커피와 원두의 품질을 유지하고 개선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김 대표) “가족들과 ‘행복할’ 수 있는 ‘행복한’ 사업을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작 아이의 행복은 충분히 만들어 주지 못한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자리를 빌려 함께 힘들었기에 누구보다 더욱 단단히 성장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이슈메이커 김남근 기자 issue8843@issuemak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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