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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명가’의 몰락 이유는?

매거진

by issuemaker 2023. 12. 4.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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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명가’의 몰락 이유는?

운영 주체 제일기획 이관 후 성적 급락
투자 통해 침체된 체육계 활기 불어넣어야 지적도
 

한때 프로스포츠를 군림하며 ‘스포츠 명가’라는 칭호를 얻었던 삼성의 추락이 심상찮다. 4대 프로스포츠로 불리는 축구, 야구, 농구, 배구를 모두 평정했던 과거는 뒤로 하고, 현재는 그야말로 순위표를 거꾸로 뒤집은 듯 정반대의 성적을 내며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엘리트 체육 역시 상황은 비슷해 성과가 미진한 상황이다.
 

사진=손보승 기자


4대 프로스포츠 구단 부진 이어져
최고의 지도자와 화려한 선수 구성, 완벽한 시설을 갖췄던 삼성 스포츠 구단은 각 종목 프로 선수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 영광은 이제 과거가 됐다. 2023 KBO 리그에서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는 시즌 초 최하위까지 떨어지기도 하는 등 많은 부침 속에 8위를 기록했다. 성적 부진이 이어지자 모기업인 제일기획은 구단에 보고서 제출을 요구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에는 1982년 창단 이래 처음으로 13연패를 당해 성난 팬들이 트럭 시위까지 벌였다. 일부 팬들은 야구장에서 선수와 프런트를 공개 비판하는 ‘스케치북 시위’를 벌이기로 했고, 구단은 팬들의 스케치북까지 열어보는 사전 검열로 대응해 논란이 됐다. 결국 구단은 “팬들의 마음에 상처를 드린 점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삼성 야구단은 프로 원년부터 모기업과 팀명이 바뀌지 않고 역사를 이어온 리그의 ‘터줏대감’이다. 통산 우승 8회로 KIA 타이거즈에 이어 역대 2위를 기록 중이고, 2011년부터 초유의 통합 우승 4연패를 이뤄내기도 한 최고의 명문 구단이었다. 또한 40년 역사 동안 KBO 리그에서 단 한 번도 정규리그 최종 순위를 ‘꼴찌’로 마감해본 적이 없는 유일무이한 구단이기도 하다. 하지만 삼성은 전성기가 끝난 2016년 이후 최근 8시즌 간 7번이나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하는 암흑기를 보내고 있다.
 
프로축구 K리그1 수원 삼성의 상황은 더 암담하다. 1995년 창단 이래 4차례나 리그 정상에 오르고, 스타급 선수가 즐비해 ‘레알 수원’이라 불릴 정도로 전성기를 구가했던 것과 달리 초유의 2부 리그 강등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맞았다.
 
이병근 감독을 경질하고 김병수 감독을 선임했고, 다시 염기훈 감독대행에 이르기까지 리더십 교체를 단행했으나 여전히 반등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시즌에는 구단 최초로 승강 플레이오프까지 추락했다고 간신히 기사회생했다. 이미 2008년 마지막 우승 이후 14년간 우승 타이틀을 추가하지 못하고 있고, 최근 8시즌 사이 하위스플릿 추락만 5번에 이를 정도로 침체가 길어지고 있다.
 

프로축구 K리그1 수원 삼성을 비롯해 삼성의 4대 프로스포츠 구단들은 공히 성적 부진으로 침체기를 걷고 있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 페이스북


지난 2022/23시즌을 마친 겨울 스포츠 종목들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프로농구 KBL의 서울 삼성 썬더스는 14승 40패(.259)로 2년 연속으로 10개 구단 중 리그 최하위에 그쳤다. 농구대잔치 시절부터 남자농구 명문 팀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2006년 우승 이후 뚜렷한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특히 2016/17시즌 준우승 이후로는 6년 연속 7위 이하의 성적에 그치며 봄 농구 진출조차 실패했고 꼴찌만 3번이나 달성했다.
 
‘해가 지지 않는 왕국’으로 불리던 삼성화재 블루팡스 배구단의 상황도 처참하다. 지난 시즌 11승 25패 승점 36점으로 V리그 7개 구단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2013/14시즌 7연패를 달성한 이후 더 이상 리그 우승이 없다. 실업배구 77연승, V리그 11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 진출, V리그 8회 우승이라는 전인미답의 성과는 이미 오래된 과거가 됐다. 최근 5시즌간은 ‘4-5-7-6-7위’를 기록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모두 실패했고 꼴찌만 두 번이었다.
 

과거 삼성 스포츠단의 빼어난 성적은 ‘일등주의’를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경영철학이 반영되었던 부분이 크다. ⓒRepublic of Korea/Flickr


‘일등주의’에서 ‘실리주의’로
과거 삼성 스포츠단의 빼어난 성적은 ‘일등주의’를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경영철학이 반영되었던 부분이 크다. 스포츠에 대한 애정도 각별해 생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을 맡았고, 학창 시절에 레슬링과 특별한 인연을 맺기도 해 이를 계기로 1982년부터 1997년까지 대한레슬링협회장을 지내며 한국 레슬링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이외에 탁구·배드민턴·육상·태권도 등 비인기 종목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병실에 있던 2014년 5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그해 5월 10일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의식을 되찾지 못했던 이 회장의 병실에서) 프로야구 중계를 보고 있었는데 이승엽 선수가 홈런을 친 순간 (야구 캐스터의 목소리에 반응해) 이 회장이 눈을 크게 떴다. 선수들이 잘해줘서 정말 감사하고 고맙다”는 이례적인 발표를 한 일도 있었다.
 
황금기를 맞던 삼성 스포츠단의 동반 부진이 심화된 것에 대해 체육계는 운영 주체가 제일기획으로 이관된 시기와 맞물린다고 입을 모은다. 2014년 축구를 시작으로 남녀 농구단이 제일기획 산하에 들어갔고, 이듬해 배구에 이어 2016년 야구단 지분 67.5%까지 제일기획 소유가 됐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해당 시점 이후 각 구단의 성적이 하위권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체육계 인사들은 다시 삼성이 적극적으로 나서 스포츠를 재건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Pixabay


가장 큰 이유는 합리적 운영 기조 속 줄어든 투자가 꼽힌다. 남녀 농구단의 샐러리캡 소진율은 수년 째 70~80% 초반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는 ‘제도 안에서 허용된 예산조차도 다 소진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다시 말해 팀 내부에 고액 연봉 스타가 희소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농구나 배구에 비해 훨씬 많은 자본이 필요한 축구와 야구도 마찬가지다.
 
제일기획 이관 전 300억 원대로 알려졌던 삼성 블루윙즈의 연간 운영비용은 200억 원대로 내려앉은 것으로 전해진다. 2015년까지 부동의 팀 연봉 1위를 기록하던 삼성 라이온즈 역시 페이롤이 계속 떨어지더니 2018년 7위 수준까지 내려갔다. 2022년과 지난해 팀 평균 연봉을 3위까지 올렸지만 순위는 여전히 바닥이었다. 이는 곧 고비용 저효율 구조가 심화한 프런트의 무능함과 시스템 부재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엘리트 체육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비인기 아마 종목의 투자를 크게 줄여 삼성이 현재까지 후원을 이어가는 분야는 육상만 남은 상태다. 이 선대회장 시절에 맡은 레슬링 협회 후원도 하지 않으며 금메달 효자 종목이던 레슬링의 위상도 사라졌다. 레슬링은 지난 10월 폐막한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13년 만에 ‘노 골드’ 수모를 당했다. 은메달도 못 딴 건 1966년 방콕 대회 이후 57년 만이다.
 
무엇보다 삼성의 행보는 다른 대기업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모습이다. 40년 가까이 양궁 협회를 뒷바라지하고 있는 현대자동차, 20년 째 펜싱과 핸드볼 등을 지원해 온 SK, 스켈레톤 국가대표팀과 대한럭비협회 메인 스폰서를 맡고 있는 LG와는 상당히 다른 행보다. 현재 삼성이 회장사를 맡은 종목은 한 곳도 없다.
 
이처럼 삼성이 스포츠에 관심을 줄이자 국내 체육계가 퇴보했다는 평가도 들린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당시 삼성이 승마 협회를 지원했다는 이유로 이재용 회장이 ‘옥살이’를 한 것이 결정적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당시 삼성은 최서원(최순실)의 딸 정유라 씨에게 34억 원 규모의 말 3마리를 구입해줬다. 이로 인해 이 회장은 징역 2년6개월을 받은 후 1년 7개월을 복역했다. 여기에 이 회장이 가진 스포츠와 기업에 대한 ‘실리주의’가 작용한 것이라는 시선도 있다.
 
다만 여론친화적인 스포츠 구단 운영은 삼성 그룹과 이 회장의 이미지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 민감할 수밖에 없다. 과거 이 회장은 어머니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여동생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등과 종종 야구장 직관을 하며 대중의 호감을 끌어낸 바 있다. 그래서 다수 체육계 인사들은 다시 삼성이 적극적으로 나서 스포츠를 재건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한경 한국체육학회 회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스포츠는 국위선양이며, 국민에게 국가라는 자긍심을 느끼게 해주는 좋은 매개체다. 또 스포츠를 통해 우리나라를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홍보 효과도 있다”며 “ESG 경영에 스포츠가 포함되는 만큼 ‘재계 1위’ 삼성이 스포츠 분야에서 다시 1등 이미지를 지켜 침체된 체육계가 다시 부활했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이슈메이커 손보승 기자 rounders23@issuemak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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