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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eople] 김세라 변호사

이슈 인터뷰

by issuemaker 2020. 10. 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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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과 소통의 가치로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법조인

우리는 살면서 법률사무소의 문을 두드릴 때면 인생에서 기억하고 싶지 않을 만큼  힘든 순간 중 하나일 거라고 짐작할 법하다.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법의 손에 맡기기까지 마음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법을 놓고 다투는 데 있어 의뢰인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돌려주는 게 가장 좋겠지만, 소송 중 소통과 공감으로 함께 풀어나가는 과정도 중요하다. 포항에서 법률사무소를 운영하는 김세라 변호사는 여성이라는 점, 워킹맘이라는 점을 강점으로 따뜻한 법률서비스를 해나가기 위해 애쓰고 있다.
 
 

©김세라 변호사 


포항이 낳고 기른 여성 변호사, 지역 법률 맛집을 내세우다

김세라 변호사가 법조인으로 첫 발을 내디딘 서울을 떠나 고향인 포항으로 내려온 건 현실적인 이유다. 변호사이기 이전에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기 때문이었다. 로펌에서 근무하다 보니 야근도, 주말 근무도 많아 아이를 키우는 문제가 크게 다가왔다. 힘들지만 아이의 교육환경을 생각해 서울에서의 삶을 유지할 수도 있었겠지만 서울의 환경이 더 낫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커졌다. 왕복 3시간의 출퇴근을 감안하면서 야근과 주말 근무를 견디며 아이를 키우는 건 오히려 아이에게 더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느꼈다. 이처럼 김 변호사는 일에도 육아에도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점에서 무척 만족한다며 자신만의 첫 법률사무소를 고향에서 시작한 이유를 밝혔다.
 
포항은 서울처럼 인구수가 많지 않고, 큰 로펌보다는 개인사무소가 많다. 그 역시 자신의 이름을 걸고 법률사무소를 설립하게 됐다. 이는 법무법인에서 일하며 오랫동안 송무 업무에 집중했기에 지역민을 위해 양적 질적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이었다. 특별히 포항이 고향이라고 해서 법률사무소를 차리기에 유리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작은 오피스텔에서 혼자서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시작했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고 신진 여성 변호사다 보니 수임이 많지 않았다. 다른 곳에서 맡지 않으려고 하는 어려운 소송만 맡아서 했다. 다행히 초기에 맡았던 다소 어렵고 꺼리는 사건에서 좋은 결과를 내면서 조금씩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상담 오는 의뢰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포항 출신이라는 점이 대화를 이어나가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지금은 지역 모임에도 나가고 포항 지역 변호사들과 인맥도 쌓으면서 적극적으로 소통해 나가고 있다.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도 활용하며 법률서비스의 문턱을 낮추려 애쓰고 있다. 지방이라고 해서 법률적으로 소외받지 않기를, 포항에도 실력 있는 좋은 변호사가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우리 동네 좋은 변호사 목표로

평소 솔직함이 자신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라는 김세라 변호사는 법조인의 길을 선택한 이유 역시 솔직히 답했다. 학창 시절 그의 장래 희망은 변호사가 아니었다. 수능을 봤는데 결과가 잘 나왔고 점수에 맞춰서 법대에 진학하게 됐다는 게 그의 솔직한 설명이다. 그런데 대학에서 법학 공부를 해보니 승부욕이 있고 꼼꼼한 자신의 성격에 잘 맞았다. 지금도 소송 업무를 맡으면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사건 하나하나를 풀어나가는 게 무엇보다 재밌다. 김 변호사는 “법률적인 싸움을 하다 보면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지만 이겼을 때 느끼는 희열과 보람이 커요. 어려운 문제를 풀어나가는 게임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기본적으로 송무 변호사라고 하면 승부욕이 필수에요. 꼼꼼하게 사안을 파악하고 무조건 이긴다는 전투적인 자세로 임하는 게 필요하죠”라는 의견을 덧붙였다. 사실 과거에는 여성 변호사로서의 강점보다 마이너스 요인이 많았다. 반면 최근에는 법조인으로서 여성의 강점은 두드러진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라는 게 그의 정체성이자 변호 업무를 하는데도 자산이라고 강조하는 김세라 변호사는 “이혼소송, 양육비 문제, 아동학대 문제, 성폭력 피해 등의 사건을 하는 데 있어서 여성이라는 점,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는 점이 도움이 됩니다. 일단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고 공감의 폭이 큰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아이가 학대를 당해서 오면 그게 어떤 심정인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죠. 그래서인지 여성 의뢰인들이 더 편하게 방문하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라고 강조했다.
 
변호사로서 가장 큰 기쁨은 소송에서 이기는 순간이다. 무엇보다 승소해서 그 결과가 의뢰인에게 큰 도움으로 돌아올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그가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지역 대형 병원을 상대로 한 의료 소송이다. 김 변호사는 “한 의뢰인의 아이가 맹장으로 병원에 갔는데 오진으로 인해서 복막염으로 번지는 바람에 큰 수술을 받아 배에 큰 흉터가 남았어요. 생명에 지장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아이가 대학생이 되면서 그 흉터 때문에 대인기피증에 걸리고 결혼과 출산까지 부정적으로 바라봤죠. 아이가 크면 성형수술을 해주겠다던 병원도 말을 바꿨고 여러 법률사무소를 전전하다 저와 만나게 됐죠. 수술 후 4년 이상이 지난데다가 병원을 상대로 소송한다는 점에 겁을 내고 있었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힘든 소송이었지만 다행히 결과가 좋았어요. 병원으로부터 배상금을 받아낼 수 있었고 아이도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됐어요. 어찌나 고마워하시던지 저 역시도 정말 보람되는 사건이었습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이 밖에도 국선변호 업무와 함께 지역사회에서 법률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 민사 및 가사 조정위원, 포항남부경찰서 민원상담 변호사, 청소년 선도심사위원회 위원 등으로도 활동한다. 앞으로도 포항이라는 지역 안에서 우리 동네 좋은 변호사가 되는 것이 목표다. 마지막으로 김세라 변호사는“사실 변호사라고 해서 대단한 직업이 아니라 하나의 자격증인 것이고, 저는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저에게 소송을 맡겼던 의뢰인이 아는 사람, 친구라면서 데리고 와 소송해 달라고 하면 그만큼 기분 좋은 일이 없어요. 이렇게 계속 이 자리에서 편안하고 믿을 수 있는 법률사무소로 자리 잡고, 우리 동네 좋은 변호사로 남고 싶어요”라는 소박한 포부를 밝히며 인터뷰를 마쳤다.

이슈메이커 김갑찬 기자 kapchan17@issuemak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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