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소년부터 프로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야구 실험 ‘오승환 퍼포먼스 랩’

마운드의 마지막을 지키던 돌부처, 이제는 야구의 새로운 시작을 만들다
대한민국 야구에서 오승환이라는 이름 앞에는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돌부처’와 ‘끝판대장’, 타자의 배트 위로 솟구치는 듯했던 ‘돌직구’는 21년 선수 생활을 압축하는 단어다. 2005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데뷔한 그는 일본과 미국을 거쳐 다시 친정팀으로 돌아오기까지 한·미·일 통산 549세이브, KBO리그 역대 최다 427세이브를 남겼다. 수많은 우승의 마지막 순간과 태극마크의 뒷문을 책임지며 대한민국 마무리 투수의 기준을 새롭게 썼다. 그 시간의 상징인 등번호 21번 역시 삼성 라이온즈의 영구결번으로 남았다. 그러나 유니폼을 벗은 오승환은 21년간 마운드에서 쌓은 경험을 다음 세대와 나누기 위해 대구에서 또 다른 야구를 시작했다.
최근 문을 연 ‘오승환 퍼포먼스 랩’은 그 새로운 야구의 출발점이다. 일곱 살 유소년부터 프로 선수까지 아우르는 이곳은 트랙맨과 초고속 카메라에 동작 분석과 피칭, 트레이닝을 결합하고 자체 모션 센서 개발까지 준비 중이다. 단순히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 머물지 않고 문제의 원인을 찾아 실제 훈련으로 보완하는 ‘운동 처방’까지 연결하는 것이 핵심이다. 좋은 시스템을 찾아 일본과 미국으로 향하는 선수들을 오랫동안 지켜본 그는 이제 국내에서도 충분히 높은 수준의 훈련 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 출발점으로 선수 생활 내내 큰 사랑을 받은 대구를 선택했다는 점도 의미가 남다르다. 경기의 마지막을 지배했던 끝판대장은 왜 이제 누군가의 시작을 위한 마운드를 만들었을까. 레전드 오승환의 21년과 그가 준비하는 한국 야구의 다음을 직접 들어보고자 이슈메이커가 대구로 향했다.

은퇴 후 바쁜 행보 속에도 ‘오승환 퍼포먼스 랩’을 설립한 이유는
“선수 생활을 할 때부터 이런 공간에 대한 아쉬움이 많이 있었습니다. 국내에도 비슷한 센터들이 있지만 제가 생각했던 곳은 엘리트 선수에게만 국한된 공간이 아니었어요. 유소년이나 취미반 아이들도 야구를 쉽게 접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었으면 했습니다. 그런 기회가 없다면 좋은 재능을 가진 선수를 발견하지 못하고 놓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반대로 전문적으로 야구를 하는 선수들에게는 그 수준에 맞는 훈련 환경을 제공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장비부터 코치진까지 신경을 많이 썼고 프로 선수들이 와서 훈련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만들려고 했어요. 야구를 처음 시작하는 아이부터 프로 선수까지 모두에게 필요한 것을 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가장 큰 설립 취지입니다.”
수많은 국내외 야구 전문기관과 비교해 오승환 퍼포먼스 랩만의 가장 큰 차별점은 무엇인가
“요즘 야구는 굉장히 과학적으로 발전했고 데이터 분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데이터 어느 한쪽에만 너무 쏠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투구폼의 문제를 알려주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런 동작이 나오는지까지 찾아야 합니다. 신체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확인됐다면 결국 운동을 통해 그것을 채워줘야 해요. 저는 이 과정을 일종의 ‘운동 처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트랙맨과 초고속 카메라뿐 아니라 자체적인 모션 센서도 개발하면서 동작 분석과 피칭, 트레이닝을 하나로 연결하려고 해요. 눈대중으로만 하는 코칭도 아니고 데이터만 보여주는 분석도 아닌 두 영역을 제대로 연결하는 것이 가장 큰 차별점입니다.”

국내에서도 해외 못지않은 훈련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에 야구팬의 기대감도 높다
“현역에 있을 때 좋은 시스템을 찾아 일본이나 미국으로 가는 선수들을 정말 많이 봤습니다. 물론 해외에서 배울 부분과 좋은 시스템은 분명히 있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한국이 운동 환경이나 장비, 트레이닝 방식에서 뒤처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도 계속 공부하고 해외에서 훈련하고 온 선수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했는지 직접 물어보기도 해요. 비교해보면 생각보다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부분도 많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좋은 장비가 있느냐보다 그것을 선수에게 어떻게 적용하고 활용하느냐라고 생각해요. 선수들이 굳이 해외로 나가지 않아도 충분히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이곳에서 만들고 싶습니다.”
대구를 선택한 이유와 이곳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
“저에게 대구는 제2의 고향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할 만큼 사실상 고향과 같은 곳입니다. 삼성 라이온즈에서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했고 대구 팬들에게 정말 큰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이곳에서 시작하고 싶었어요. 좋은 시스템이 있다면 지역이나 거리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해외 야구 전문 기관을 찾는 수요도 높아졌기에 결국 선수들이 이곳까지 찾아올 수 있을 만큼 제대로 된 환경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해요. 지금은 일곱 살 아이부터 프로 선수까지 정말 다양한 선수들을 이곳에서 만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여기에서 시작한 아이가 프로야구를 대표하고 더 나아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2군 선수가 1군에 올라가고 프로 선수들이 더 오랫동안 좋은 기량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는 곳으로 만드는 것도 중요한 목표입니다.”

향후 프로팀이나 국가대표 지도자를 맡더라도 퍼포먼스 랩은 계속되는지
“앞으로 제가 어떤 일을 하게 될지는 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공간이 단기간에 없어지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외부 일정이 없으면 거의 매일 나올 정도로 저도 굉장히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프로팀 지도자를 맡는다면 두 일을 지금처럼 직접 병행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겠죠. 그렇다고 이곳이 저 혼자 있어야만 운영되는 구조는 아닙니다. 각 분야의 전문 코치들이 함께하고 있기 때문에 시스템은 계속 이어질 수 있어요. 결국 중요한 것은 제가 어디에 있느냐보다 이곳이 계속 선수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공간으로 남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돌부처’라는 이미지와 달리 최근 시작한 유튜브 역시 야구팬의 관심이 높다
“유튜브는 사실 제가 하고 싶었습니다.(웃음) 많은 분이 오승환 하면 돌부처나 표정 변화가 없는 사람을 떠올리시는데 실제 저는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야구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하고 팬들에게 지금까지 보여드리지 못했던 모습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야구를 잘 모르는 분들도 제 채널을 통해 조금 더 쉽게 야구를 접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어요. 그래서 일상의 모습도 보여드리고 ‘돌직구를 찾아서’처럼 좋은 투수들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콘텐츠도 장기적으로 이어가려고 합니다. 그중 한 선수가 나중에 프로에 진출한다면 팬들에게도 그 선수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하나의 서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하고 싶은 것만 보여드리기보다 팬들이 원하는 것을 듣고 함께 만들어가는 채널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불꽃야구’와 해설위원으로 다시 만난 야구는 현역 시절과 어떻게 다른가
“불꽃야구는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 선수들과 다시 야구를 해보겠느냐는 생각이 컸습니다. 첫 등판 때는 은퇴 후 오랜만에 마운드에 섰고 팬들에게 처음 인사드리는 자리라 생각보다 긴장도 많이 했어요. 몸 상태는 좋은데 아직 팔에 불편함이 있어서 제가 원하는 만큼의 공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퍼포먼스 랩에서 제 몸을 가지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하면서 운동과 치료를 병행하고 있어요. 반대로 해설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운 영역입니다. 현역 때 마운드에서 느꼈던 상황과 감정을 시청자에게 바로 전달하고 싶은데 중계석에서는 놓치는 순간도 생기더라고요. 해설을 하면서 오히려 야구에는 공부의 끝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고 있습니다.”

현역 당시 구위와 제구 중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나
“많은 분이 제 강점으로 강한 구위를 먼저 말씀하시지만 저는 구위보다 제구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제구가 다른 선수보다 특별히 뛰어났다는 의미라기보다 투수로서 그 부분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뜻이에요. 실제 훈련에서도 제구에 상당히 많은 중점을 뒀고 그것이 트레이닝으로 이어지면서 결과적으로 강한 구위도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돌직구 역시 단순히 팔의 힘만으로 만들어진 공은 아니었어요. 저는 몸의 회전력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몸 전체가 연결된 상태에서 회전을 얼마나 빠르고 효율적으로 가져가느냐를 계속 고민했어요. 지금 퍼포먼스 랩에서 투구폼과 신체 움직임, 트레이닝을 함께 보는 것도 제가 선수 시절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과 연결돼 있습니다.”
오승환이 생각하는 좋은 마무리 투수의 조건은 무엇인가
“평상시에 좋은 공을 던지는 투수는 정말 많습니다. 하지만 좋은 마무리는 그날의 점수 차이나 경기 흐름에 맞는 피칭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전날 블론세이브를 했다고 해서 그 감정이 오늘 경기까지 이어져서는 안 됩니다. 저도 세이브를 했을 때나 실패했을 때나 겉으로 크게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어요. 프로야구는 144경기를 치르기 때문에 그날의 실패도 결국 수많은 경기 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속으로는 같은 실패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분명히 했지만 거기에 너무 많은 감정을 소비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어떤 결과가 나와도 다음 날 다시 같은 마음으로 마운드에 올라갈 수 있는 것이 좋은 마무리에게 필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21년의 현역 생활을 마친 지금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고 앞으로 어떤 야구를 꿈꾸나
“팬분들이 오승환이라고 했을 때 자연스럽게 ‘마무리 투수’와 ‘세이브’를 떠올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동시에 지금 뛰고 있는 후배들이 저를 롤모델로만 생각하지 말고 경쟁 상대로 생각해서 제 기록을 뛰어넘었으면 해요. 은퇴는 특정한 한 경기 때문이라기보다 제 몸을 100% 컨트롤하기 어렵다는 것을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결정하게 됐습니다. 막상 은퇴를 결정했을 때는 크게 아쉽지 않았고 지금도 운동하고 공을 던지면서 새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어요. 선수에서는 은퇴했지만 야구 자체가 제 삶에서 끝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은퇴 이후 제2의 사회생활에서 첫 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먼 미래보다 오늘 해야 할 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도 야구였고 두 번째도 야구였듯이 앞으로도 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야구일 것 같습니다.”
오승환에게 은퇴는 야구와의 작별보다 마운드가 달라진 일이었다.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책임졌던 그는 이제 자신을 넘어설 누군가의 첫 번째 공을 바라본다. 언젠가 이곳에서 출발한 이름 하나가 프로의 마운드에 오르고 더 먼 무대로 향한다면 그것은 끝판대장이 남기는 또 다른 기록이 될지도 모른다. 오승환의 두 번째 시즌은 이제 막 시작됐다.
이슈메이커 김갑찬 기자 kapchan17@issuemak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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