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언어로 증명하는 아름다움의 가치
자연으로부터 얻은 감각, 공간이라는 도화지를 꽃으로 물들이다
현장 경험과 이론, 그리고 다음 세대를 향한 교육의 방향 설계
꽃과 공간은 언제나 완성된 장면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공간을 바꾸는 꽃은 보기 좋은 장식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의뢰자의 목적을 읽고, 현장을 끝까지 확인해야 하며, 결과에 책임지는 일이 함께 따라붙어야 한다. 그럼에도 현장 한편에는 값만 낮춘 연출과 겉모습만 그럴듯한 작업이 적지 않다. 사진은 화려하지만 공간은 허술하고, 배움의 기회는 넘치지만 제대로 된 배움을 익히는 이들이 드물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그래서 더 눈에 들어오는 이름이 있다. 어린 시절 자연과 그림에서 감각을 익히고, 오랜 유통 현장과 브랜드 프로젝트를 경험하며 꽃의 쓰임과 결과의 무게를 함께 배워온 사람. 주식회사 플로리싱서경(flourishing seokyung)의 김서경 대표가 지켜온 것은 보기 좋은 장식보다 완성도와 신뢰가 먼저여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이슈메이커는 꽃의 아름다움보다 그 아름다움을 떠받치는 책임의 무게를 지켜온 그녀의 발자취를 조심스레 따라가 보았다.

자연과 그림 사이에서 자란 감각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좋아한 김서경 대표. 초등학교 3학년 때 미술 선생님의 권유로 특활반에 들어간 뒤, 학교 안팎의 미술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자연스럽게 미대를 목표로 삼는 아이로 성장했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도시락을 두 개씩 싸 들고 다니며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그림을 그렸고, 친구들이 스케치북을 내밀면 크로키를 해주는 일을 즐겁게 받아들였다. 또래와 어울리는 시간보다 미술실에 남아 종이와 연필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 편한 학생이었다.
그 무렵 그녀의 손에는 꽃도 함께 들려져 있었다. 강원도 인제의 논둑길과 밭둑길, 산책길과 개울가에는 계절마다 각기 다른 풀과 꽃이 자라났고, 그녀는 그런 길을 오래 거닐었다. 길가에 핀 꽃을 꺾어 밭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어머니에게 건네는 일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집 안 풍경도 그와 멀지 않았다. 울타리 주변에는 약초 호박과 앵두나무, 과실수와 꽃들이 자라고 있었고, 어머니는 비어 있는 자리를 그냥 두지 않았다. 김 대표가 공간을 보면 먼저 채워질 모습을 떠올리는 감각은 이러한 유년 시절의 환경 속에서 자라났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은 처음부터 같지 않았다. 그녀는 미대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과 당시 분위기는 딸의 미대 진학에 너그럽지 않았다. 그럴수록 더 잘해야 한다는 마음은 커졌다. 공부도 열심히 했고, 상도 더 많이 받아왔다. 어머니에게 인정받고 싶었고, 끝내 허락을 얻고 싶었다. 김 대표는 “항상 미술실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스케치북과 연필을 들고 다녔어요. 길가의 꽃을 보면 엄마 생각이 나서 바구니에 담아 드리곤 했죠”라고 말했다. 그 말에는 어린 시절의 취향만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 했던 마음도 함께 들어 있다.
결국 그녀는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 모아둔 약간의 돈을 들고 홀로 상경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서울에 한 번도 올라와 본 적이 없던 그녀였지만, 서울로 가야만 자신이 원하는 꿈을 펼쳐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훗날 조화 유통 현장과 공간 장식의 세계에서 자기 자리를 만들게 되는 출발점도 바로 이 선택에서 시작됐다.

조화 유통 현장에서 확인한 손의 감각
서울로 올라온 뒤 김서경 대표의 마음속 중심은 여전히 미대 진학에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냉정했다. 미대를 가기 위해서는 학원도 다녀야 했고, 경제적 뒷받침도 필요했다. 갈 수 없는 길을 붙들고 서 있기보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자리에서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그 무렵 소개로 인연을 맺게 된 곳이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쪽 조화 유통업체였다.
그곳에서 그녀는 예상하지 못한 내면의 감각을 확인한다. 그림을 그리며 익힌 색감과 구도, 그리고 이를 손으로 만들어 내는 감각이 조화 작업 안에서 그대로 살아난 것이다. 작품처럼 만들어 벽에 걸어놓은 상품들 가운데 유독 그녀가 만든 것들만 골라 주문하는 일이 이어졌다. 작가와 원장, 플로리스트들이 그녀의 이름을 몰라도 결과물은 먼저 알아봤다. 오랫동안 몸에 익혀온 감각이 다른 형태로 드러나기 시작한 셈이었다. 처음에는 생계를 위한 일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 일 안에도 자신이 오래 바라보던 미감과 창의가 들어갈 자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를 찾는 이들의 성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브랜드 디스플레이와 공간 연출을 맡은 실무자들, VMD(Visual Merchandising) 관계자들, 더 큰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공간의 분위기를 바꾸고, 시즌을 설명하고, 브랜드의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결과를 원했다. 그녀는 현장에서 그들과 머리를 맞대고 일하면서 많이 배웠지만, 동시에 분명한 부족함도 느꼈다. 김 대표는 “저를 믿고 큰 프로젝트를 맡기는데, 제가 꽃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있었어요. 그게 너무 미안해서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과거 미대 진학은 현실적으로 접어야 했지만, 꽃과 식물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은 포기할 수 없었다. 대학에 진학해 일하면서 공부하고, 공부하면서 다시 일을 보는 시간이 이어졌다. 일과 학업을 함께 이어가는 시간은 결코 가볍지 않았지만, 그녀는 결국 졸업까지 마쳤다. 이와 동시에 그녀는 동양 꽃꽂이 분야에도 관심을 가졌다. 일을 마친 뒤 선생님을 찾아가 기본을 익혔다. 출근은 아침 8시였고 퇴근 시간은 따로 없을 정도로 일이 많았지만, 그래도 그 시간을 어떻게 해서든 만들어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꽃의 선이 무엇인지, 꽃꽂이의 기본이 무엇인지, 각 식물의 성질과 쓰임이 어떤지 알아야만 자신이 하는 일의 기준이 제대로 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장에서 실수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감각이 있다는 말로는 끝낼 수 없는 영역이라는 사실을 이미 몸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함께 일하는 실무자들이 윗선에 결과를 보고할 때, 그 결과물이 설득력을 가져야 한다는 점도 그녀는 일찍 알았다. 그래서 의뢰를 받으면 단순히 만들어주는 데서 끝내지 않고, 필요한 요소를 더 챙기고, 상대가 놓친 부분까지 먼저 찾아서 보완하는 방식으로 일했다. 그러다 보니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사원 시절부터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시간이 흘러 팀장과 부장이 되고, 또 각자의 회사를 차린 뒤에도 여전히 그녀를 먼저 찾는 신뢰 관계로 이어졌다. 김 대표에게 현장은 단순한 일터가 아니라, 신뢰가 어떻게 쌓이고 어떻게 오래 남는지를 배운 학교이기도 했다.

국수 한 그릇에서 시작된 두 번째 출발
김서경 대표가 오랜 유통 현장을 정리한 데에는 분명한 계기가 있었다. 일은 계속 커지고 있었지만, 자신의 보물인 두 아이에게 손이 필요한 시기가 더는 어긋나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특히 작은아이가 많이 아팠던 때, 그녀는 아이와 함께하는 방향을 택했다. 맡은 일은 끝까지 마무리한 뒤 조용히 정리하는 편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퇴사한 뒤, 그녀는 꽃 일을 이제 정말 끝낼 생각이었다. 오래 좋아했던 일이었지만, 그만큼 지쳤고, 사람에게서 받은 피로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을 놓은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하지 못한 연락이 찾아왔다. 자신을 오래 알아 온 거래처 사장님이 국수 한 그릇 사주겠다며 남대문으로 나오라고 했다. 지금은 바깥으로 나갈 형편이 아니라고 여러 번 고사했지만, 그는 전주에서 올라왔다며 한 번만 얼굴을 보자고 했다. 그렇게 나간 자리가 김 대표 인생의 방향을 또 한 번 바꾸게 됐다. 남대문 대도상가 3층의 작은 꽃가게 부스를 운영하던 사람이 급하게 중국으로 가야 하는 사정이 생겼고, 자리를 비워두기보다 누군가가 맡아주는 편이 낫겠다며 그녀에게 공간을 내민 것이다. 보증금도, 권리금도 없었다. 월세만 내고 아이와 함께 있으면서 작은 소품을 만들어 보라는 제안이었다. 사업을 새로 시작할 자금도, 마음의 준비도 없던 그녀에게 그 제안은 너무 갑작스럽고 낯선 일이었다. 하지만 그 자리를 권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같은 말을 했다. ‘김서경이면 할 수 있다’, ‘김서경이어야만 한다’라는 말이었다.
그때 만들어진 사업장의 이름은 ‘소울가든’이었다. 꽃을 기술로만 다루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으로 전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 그녀가 사업자를 냈다는 소문이 퍼지자 예전 거래처와 유통 관계자들이 꽃과 자재를 그냥 가져다주며 팔아보라고 권했고, 백화점과 브랜드 쪽에서도 연락이 이어졌다. 그녀는 “국수 한 그릇 얻어먹으러 갔다가 시작한 일이었어요. 저는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정도면 충분했고, 정말 잠깐 맡아줄 생각이었는데, 사람들이 저를 그렇게 가만히 두지 않았어요”라며 소탈한 미소를 지었다.
누구나 들어가고 싶어도 쉽게 들어가지 못하는 백화점 업체 등록이 빠르게 진행됐고, 브랜드 시즌 디스플레이와 프로젝트가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작은 부스 하나로 감당하기 어려운 물량이었다. 문제는 공간이었다. 자재를 둘 곳도, 큰 작업을 소화할 작업대도 부족했다. 한 칸짜리 부스에서 시작한 일은 이미 그 크기를 넘어 있었고, 옥상까지 작업 공간으로 쓰면서 겨우 버텨야 할 만큼 규모가 커졌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고(故)정흥례 전도사의 도움을 받았다. 그 인연은 단순한 공간 소개에 그치지 않았다. 이후에도 그는 김 대표 삶의 중요한 길잡이이자 멘토로 곁을 지켜온 인물로 남았다.

멈춰두었던 시계태엽
처음으로 사업자를 내고 소울가든으로 일을 시작해 보니, 김서경 대표의 업무는 결과물만 잘 만들면 되는 일이 아니었다. 일정과 예산, 세금 계산과 계약, 사후 대응까지 모두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했다. 김 대표는 현장에서 오래 일하며 이미 그 무게를 알고 있었지만, 개인사업자 형태로는 감당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도 점점 분명해졌다. 결국 2018년 1월, 그녀는 법인 전환을 택한다.
이름도 바꿨다. 주식회사 플로리싱서경(flourishing seokyung/이하 플로리싱서경)이라는 법인명에는 그녀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고 싶은지가 담겼다. 플로리시(flourish)는 긍정심리학에서 개인의 번영과 성장을 뜻하는 개념으로, 잠재력을 발휘해 잘 자라고 활짝 피어나는 상태를 가리킨다. 영어 단어 자체로도 번창하다, 잘 자라다, 활약하다의 의미를 품고 있다. 김 대표는 꽃과 식물을 다루는 사람으로 오래 살아왔지만, 법인 전환 이후에는 아름다운 결과물을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사람과 일, 재능과 시간이 함께 성장해 가는 방향을 담고 싶어 했다.
하지만 법인 전환이 곧바로 안정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더 큰 규모의 일, 더 큰 금액의 프로젝트를 맡게 되면서 사업의 외형은 커졌지만, 그만큼 실속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게다가 코로나를 지나며 업계 분위기도 크게 달라졌다. 기존 장식을 재활용하려는 흐름이 강해졌고, 입찰과 최저가 경쟁이 심해지면서 결과보다 가격이 먼저 기준이 되는 일도 빈번해졌다. 오랫동안 현장에서 결과와 신뢰로 일해온 사람에게 그런 변화는 단순한 경기 문제를 넘어선 피로로 다가왔다. 매출은 보이는데, 정작 일의 가치와 보람은 흐려지는 시간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때 김 대표가 다시 붙든 것이 ‘공부’였다. 외형은 빼앗길 수 있어도, 머릿속에 들어 있는 지식과 경험은 누구도 가져갈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평생 꽃과 식물을 만지며 살아왔지만, 그럴수록 더 깊이 알아야 한다는 생각도 커졌다. 그래서 대학원 과정과 해외 공부, 각종 전문 교육을 계속 이어갔다. 석사를 마친 것도, 일본과 미국의 전문가 과정을 꾸준히 공부한 것도 같은 흐름 안에 있다. 그리고 지금의 경험을 이론과 체계로 다시 정리해야 앞으로 더 오래 갈 수 있다고 바라보게 됐다.
이 시기에는 개인의 삶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쏟아야 했던 날들이 지나고, 아이들이 성인이 된 뒤에야 그녀는 비로소 “엄마가 하고 싶은 일들, 다 했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은 늦게 찾아온 허락이자, 멈춰두었던 자신만의 시계태엽을 다시 돌릴 수 있는 계기였다. 대학원 공부와 해외 연수, 자료 정리와 책 준비, 식물 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일은 모두 그 태엽 위에 놓여 있다.

다음 사람을 위한 기준의 준비
김서경 대표가 지금 더 오래 생각하는 것은 ‘어떤 작업을 더 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다.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업계에 들어오는 사람들, 실력보다 포장과 가격 경쟁에 먼저 내몰리는 흐름, 그리고 그 안에서 기준을 잃어가는 현장을 오래 지켜보면서 이제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정리해 건네야 할 때가 왔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녀가 교육의 필요성을 더 절실하게 느낀 계기는 현장 밖에서 찾아왔다. 외부에서 일반인을 직접 만나는 강의 자리가 생기면서,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식물과 꽃을 다루는 가장 기초적인 지식부터 접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전문 과정을 밟고도 설 자리가 없다고 말하는 젊은 세대의 고민도 여러 차례 들었다. 실력이 있어도 연결될 기회가 없고, 제대로 배우고 싶어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는 그녀에게도 가볍지 않게 남았다. 그래서 김 대표는 현장과 공부를 함께 거친 사람이 다음 세대를 제대로 받쳐줘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전한다.
김 대표는 “교육은 기술 몇 가지를 전하는 수준이 아니라, 현장에서 무엇을 먼저 보고, 의뢰자의 요구를 어떻게 읽고, 결과에 어떤 기준으로 책임져야 하는지까지 함께 가르쳐야 합니다. 꽃과 식물을 예쁘게 다루는 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라며 “정말 한 사람을 가르치더라도 제대로 배우고,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을 남기고 싶습니다”라고 힘주어 전했다.
그녀는 지금도 자연과 식물 공부를 계속 넓혀가고 있다. 공간 장식가로 오래 일해왔지만, 그 바탕이 되는 식물의 성질과 계절성, 자라는 조건과 쓰임을 더 깊이 알아야 한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새로운 식물과 재배 방식, 해외의 사례와 교육 프로그램에도 꾸준히 관심을 두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화려한 결과만 보고 지나가면 끝나는 일이 아니라, 그 결과를 가능하게 한 원리까지 이해해야 다음 작업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숫자와 속도가 먼저 앞서는 흐름 속에서도 김서경 대표 같은 사람이 여전히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오래 일한 사람은 많지만, 진심으로 자신의 시간을 정리해 다음 사람에게 건넬 준비를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김 대표의 다음 행보가 더 궁금해지는 이유는, 그녀가 평생을 꽃과 공간을 다뤄온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사람과 일의 무게를 가볍게 보지 않는 진정한 ‘장인(匠人)’의 반열에 오를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슈메이커 김남근 기자 issue8843@issuemak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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