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넘어 사회적 건강 회복 꿈꾸는 로컬 아카이브
‘나’를 이해하고 자서전으로 치유하는 자기 돌봄 솔루션
충남 홍성군 내포신도시에는 특별한 연구소가 있다. 타로와 점성학으로 타고난 기질을 분석하고, 글쓰기를 통해 지나온 삶을 재해석하며 마음을 치유하는 곳. 바로 ‘(주)자기돌봄연구소·아카이브 품다(이하 품다)’이다. 대학 강단에서 국문학을 가르치던 학자에서, 이제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그들의 역사를 기록하는 자기 돌봄 ‘구루(Guru)’로 변신한 구나경 대표는 ‘당신의 모든 것을 품다’라는 사명처럼, 개인의 아픔과 상처, 그리고 영광의 순간까지 모두 끌어안아 새로운 희망의 서사로 빚어내고 있다.

위대한 유산, ‘자서전’으로 세대와 시대를 잇다
구나경 대표가 제안하는 자기 돌봄의 첫 단계는 ‘나를 제대로 아는 것’이다. 품다는 일반적인 심리 상담과 달리, 타로와 점성학 기반의 ‘네이탈 차트(Natal Chart)’를 활용한다. 구 대표는 이를 “태어난 순간 하늘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운명의 이정표”라고 설명한다. 점술적인 미래 예측이 아니라, 성향과 소통 방식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다. “차트는 내가 어떤 기질을 타고났는지, 어떤 관계에서 갈등을 빚기 쉬운지를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지도와 같습니다. 이를 통해 내 성격이나 삶의 굴곡을 ‘문제’가 아닌 고유한 ‘특성’으로 받아들이게 되죠. 나를 전격 해체해 이해하고 나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타인과의 관계도 풀리기 시작합니다.”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고 사랑할 때 비로소 타인을, 그리고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품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깊이 있는 자기 이해는 ‘글쓰기’로 이어진다. 품다의 핵심 프로그램인 ‘자서전 쓰기’는 단순한 작문 수업이 아니다. 과거의 기억을 소환해 상처를 직면하고, 현재의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미래의 자양분으로 삼는 치유의 과정이다. 구 대표는 “글쓰기를 통해 참가자들은 내 삶이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님을, 그 자체로 위대한 역사임을 깨닫게 된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품다의 시선은 개인을 넘어 지역사회의 소외된 이웃을 향한다. 구 대표는 개인의 생애를 기록하는 ‘라이프 아카이빙’을 넘어, 마을의 역사를 담는 ‘로컬 아카이빙’과 이주민의 삶을 기록하는 ‘디아스포라 아카이빙’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대표적인 프로젝트가 두 가지 있는데, 첫째는 이주민 여성들의 ‘이중 언어 사진첩’ 제작이다. 중국, 캄보디아, 베트남 등에서 온 이주 여성들이 자신의 모국어와 한국어로 삶을 기록하며, 낯선 땅에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가족들에게 자신의 뿌리를 당당히 알릴 수 있도록 도왔다. 아울러 고려인의 이주 역사를 담은 기록도 함께하며 디아스포라 아카이빙의 외연을 넓혀가고 있다.
최근에는 그동안 발간한 책과 영상 자서전을 한곳에 모아 충남도서관에서 ‘삶을 품다’라는 전시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관람객들은 누군가의 삶을 살펴보고 울고 웃는 시간을 가지며 자연스럽게 그들을 품게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한편 구 대표는 품다가 지역사회에서 안착하며 전시 등을 통해 지역민과 소통할 수 있게 된 건 홍성군 농촌 신활력플러스사업 추진단의 지원이 큰 도움이 되었기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치유를 넘어 사회적 건강으로, ‘품다’가 그리는 미래
구나경 대표는 ‘기록되지 않는 삶은 사라지지만, 기록된 삶은 유산이 된다’고 믿는다. 특히 어르신들의 자서전은 개인의 역사를 넘어 한 시대의 증언이자, 다음 세대에 전하는 귀중한 지혜다. 그는 어르신들이 처음에는 “내가 무슨 자서전이냐”며 손사래를 치다가도, 완성된 책을 받아들고는 “내 삶이 헛되지 않았다”며 눈물 흘리는 모습에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형편이 어려워 학교를 다니지 못했던 어머니, 가족을 위해 희생했던 아버지의 삶이 자서전을 통해 ‘위대한 헌신’으로 재평가됩니다. 이는 자녀들에게도 부모님을 새롭게 이해하고 존경하게 되는 계기가 되죠. 이것이야말로 돈으로 살 수 없는 최고의 유산입니다.”
이러한 가치를 더 널리 퍼뜨리기 위해 품다는 ‘생애 기록 전문가’와 ‘자기 돌봄 전문가’ 양성에도 힘쓸 방침이다. 마을 활동가들이 직접 이웃들의 삶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다. 아울러 누구나 쉽게 자신의 이야기를 정리할 수 있도록 돕는 자기 돌봄 글쓰기 키트도 출시해 관련 문화를 전국적으로 확산할 계획이다.
예비사회적기업으로서 품다는 여전히 치열한 고민 속에 있다. 사회적 가치 창출과 기업의 지속 가능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구 대표는 “품이 많이 들고 당장의 수익성은 낮을지라도, 한 사람의 마음을 살리는 일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실제 지역의 은둔 청년을 품어 세상 밖으로 이끈 사례는 품다의 사회적 가치를 증명한다. 진로 고민으로 방황하던 은둔 청년에게 품다의 공간을 내어주어 어린 시절 연주하던 첼로를 다시 연습하게 하고, 작은 연주회 무대도 마련해 주었다. 이 청년은 이후 자신감을 회복하고 지역 기관에 취업하며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히 복귀했다. 구 대표는 “한 사람을 살리는 일이 곧 그 가정을 살리고, 나아가 지역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길임을 확인한 순간”이라는 소회를 밝혔다.
그의 목표는 품다를 ‘마음의 응급실’이자 ‘삶의 도서관’으로 만드는 것이다. 누구나 지칠 때 찾아와 쉬어갈 수 있고, 서로의 삶을 읽으며 위로받는 공간이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별을 품고 태어난 존재들입니다. 품다는 그 별이 구름에 가려지지 않고 온전히 빛날 수 있도록, 당신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따뜻하게 품겠습니다.” 상처 입은 마음들이 모여 서로를 보듬고, 그 온기가 다시 사회로 퍼져나가는 곳. 구나경 대표와 연구소 ‘품다’가 써 내려가는 희망의 서사는 이제 막 첫 장을 넘겼을 뿐이다.
이슈메이커 손보승 기자 rounders23@issuemak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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