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층 반발에 대권 주자 대응 고심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구조개혁 논의 착수
이른바 ‘연금 개혁’으로 불리는 제3차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공포됐다. 2007년 이후 18년 만에 이뤄진 이번 개혁안의 골자는 현행 9%의 보험료율을 13%로 인상하고, 소득대체율 역시 40%에서 43%로 올리는 것이다. 한마디로 ‘더 내고 더 받는’ 개혁안이다. 여야 합의를 거쳐 정쟁은 최소화했지만, 이번 개혁은 청년 세대들의 부정적인 반응을 낳으며 세대 갈등에 불을 붙인 모양새다.
‘더 내고 더 받는’ 모수 개혁
1988년 국민연금 도입 후 세 번째 이뤄진 연금 개혁은 ‘더 내고 더 받는’ 식으로 숫자를 바꾼 모수 개혁과 함께 국가 지급 보장 명문화, 군 복무·출산 크레디트 확대 등을 담고 있다. 모수 개혁으로 국민연금기금 소진 시기를 2056년에서 2064년으로 8년 늘려 시간을 번 만큼 정부는 향후 구조개혁에 집중할 전망이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국무회의에서 “모수 개혁이 마무리된 만큼 이제 우리 미래세대가 짊어져야 할 부담을 최소화하면서도 지속가능한 연금 재정 구축을 위한 구조개혁에 본격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국민연금 구조개혁을 논의하기 위한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도 본격적인 구조개혁 논의에 착수했다.
구조개혁은 숫자를 조정하는 게 아니라 국민 기초와 노후생활의 바탕이 되는 연금의 구조를 바꾸는 작업이다. 다층적 소득보장체계 안에서 제도끼리 연계하는 것으로, 모수 개혁 못지않게 지난한 과정이 예상된다. 특히 인구 구조와 경제 상황에 따라 보험료율, 연금액, 수급 연령을 자동으로 바꾸는 자동조정장치 도입을 두고 정부와 정치권, 시민사회 사이에서 이견을 노출하고 있는 상태다. 정부는 이번 국민연금 개혁 과정에서 줄기차게 자동조정장치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시민사회에서는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그 전에 당장 꺼야 할 ‘급한 불’은 모수 개혁 후 불거진 ‘세대 갈등’이다. 지난 3월 20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처리한 이후 30·40대 여야 의원 8명은 “(이번 개정으로) 강화된 혜택은 기성세대부터 누리면서 부담은 다시 미래세대의 몫이 됐다”고 비판했다. 이번 개혁이 청년에 불리하다는 주장이다. 실제 국회 본회의 표결 결과에서도 불만이 드러났다. 재석 277명 중 찬성 194표로 법안이 통과되긴 했지만, 기권표가 43표였고 반대표도 40표나 나왔다. 표결에서 당 지도부의 뜻을 따르지 않은 의원이 적지 않았다는 얘기다. 전국 대학 총학생회도 이번 국민연금 개정에 반대 목소리를 냈다. 대학생 10명 중 9명 이상이 국민연금 개혁안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총학생회 공동포럼은 4월 14일 ‘2025 국민연금 전국 대학생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대학생들이 정부의 연금 개혁안에 전반적으로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청년 세대 “우리가 불리” 주장
이번 국민연금 개혁으로 올해 41.5%인 소득대체율은 내년부터 43%로 올리게 됐고, 대신 지금 9%인 보험료율도 내년부터 매년 0.5%포인트씩 올려 2033년에 13%로 만든다. 핵심은 보험료율 증가를 모든 세대에 일괄 적용하기로 한 부분이다. 정부는 당초 보험료율을 세대별로 차등해 인상하는 안을 제안했다. 그러나 차등 적용이 불러올 세대 간 갈등과 세대 내부 간 소득격차 등도 고려해 바꿨다. 한편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연금 가입 기간을 인정해 주는 기간은 확대했다. 군 복무의 경우 현행 6개월에서 12개월로 늘어나고 출산의 경우는 첫째와 둘째 아이는 각각 12개월, 셋째부터는 18개월씩 인정한다. 국가의 연금 지급 보장 의무는 명문화해 법에 담는다.
‘세대 갈등’은 현재 연금 수급자들도 소득대체율 상승의 혜택을 누린다는 오해가 퍼지면서 확산했다. 하지만 소득대체율 43%는 2026년 이후 보험료를 내는 가입자에게 적용된다. 현재 연금 수급자도 다 함께 소득대체율이 43%로 오르는 건 아니다. 정부와 일부 전문가들은 오히려 이번에 개혁하지 않았다면 청년층에게 더 불리해졌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올해 20세인 2006년생들은 개혁하지 않을시 연금 기금이 고갈됐을 2056년 이후 30% 안팎의 보험료를 내야 해 이에 따른 생애 평균 보험료율은 14.3%가 된다. 하지만 이번 개혁으로 연금 기금이 2071년까지 유지돼 생애 평균 보험료율은 12.7%로 내려가고, 소득대체율은 43%로 오르게 된다. 더욱이 이번 개정안에는 국가가 연금 지급을 보장한다는 내용이 담겨 연금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도 해소됐다.
물론 이번 연금 개혁은 국민연금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국민연금 제도는 비슷한 사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부담은 적고 급여는 많다. 보험료율 18.3%인 일본 후생연금의 소득대체율은 25%에 그친다. 평생 낸 보험료와 평생 받게 되는 보험금의 현재가치를 비교하는 수익비로 계산하면, 국민연금의 수익비는 무려 1.8이다. 낸 돈보다 1.8배 많은 연금을 받는다는 뜻이다. 개혁안은 보험료율도 높이지만 소득대체율도 높여 여전히 ‘저부담-고급여’ 체제다. 이런 방안은 근본적인 개혁일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개혁안이 시행되면 국민연금 기금이 바닥나는 시점은 2056년에서 2064년으로 8년 늦춰진다.
세대별 접근 옳지 않다는 지적도
연금 개혁 과정에서 드러난 세대 간의 엇갈린 시선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가늠하는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다. 미래세대는 개혁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자신들이 짊어져야 할 부담 증가에 대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반면 노년층은 안정적인 노후 보장을 위한 연금 수령액 인상이 필요하고, 또 연금 수령액 인상은 미래세대에 더 많은 혜택을 준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세대 간 균열은 단순한 의견 차이를 넘어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를 무임승차자로,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를 이기주의자로 낙인찍으며 갈등의 골만 깊게 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미래세대 부담에 관한 논쟁으로 대응에 고심하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여권 대권 주자들은 개혁안을 ‘개악’이라고 비판하며 청년 세대 요구를 반영해 재개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은 “연금개혁을 했지만 너무나 청년에게 가혹한 부담을 지우는 개악이 됐다”며 “(구조개혁 등 추가 개혁 없이) 그대로 끝나면 받아들일 수 없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와 함께 “빈 깡통이 아니라 청년들도 받을 수 있는 지속가능한 국민연금을 만들기 위해서는 제2 연금 개혁이 필요하다. 대통령이 되면 반드시 해내겠다”고 말했다. 김동연 경기지사 역시 언론 인터뷰에서 “재정 부담과 책임을 청년 세대에게 보다 많이 떠넘기는 것은 세대 간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추가적인 연금 개혁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세대 균열을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연금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이견을 조율하는 것을 넘어 실질적인 노력과 구체적인 조건들이 충족돼야 한다고 말한다. 세대 간 소통과 공감대 형성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개발과 문화 콘텐츠 제작이나 공청회, 토론회 등이 이뤄져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노력이 있어야만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연금 개혁은 어느 한 세대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인 만큼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 대신, 미래를 향한 공동의 책임을 인식하고 세대 간 공존과 상생을 위한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슈메이커 손보승 기자 rounders23@issuemak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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