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과 나눔으로 지역 공연예술의 폭을 넓혀온 20년의 기록
공연 해외 진출과 국악 뮤지컬 도전까지… 다음 무대 준비하는 권안나 단장
예술교육은 재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아이가 자신의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배울 수 있는 시간과 설 수 있는 무대가 함께 필요하다. 그러나 지역의 현실은 늘 넉넉하지 않다. 배움의 환경과 이에 대한 지속 가능성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아동·청소년 공연예술은 지도자의 역량뿐 아니라 학부모의 신뢰, 단체의 지속성, 지역사회의 관심이 함께 맞물려야 한다. 이러한 환경에서도 아이들의 무대와 지역 공연예술의 폭을 넓혀오며 공연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남는 마음의 이야기를 전해오고 있는 이가 있어 이목이 집중된다. 화려한 공연보다 무대 위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의 얼굴을 먼저 바라보는 경남뮤지컬단 권안나 단장을 만나 음악으로 아이들의 시간을 길러온 지난 20년과 앞으로의 무대를 들어보았다.

시골 마을에서 시작된 음악, 아이들을 이끌던 첫 무대
경북 의성 한 시골 마을에 터를 잡은 평범한 가족. 전문적으로 음악을 배운 집안은 아니었지만, 교회에서 지휘를 맡던 아버지와 노래를 좋아하는 어머니의 일상 안에는 늘 소리와 리듬이 있었다. 지금처럼 전문 음악학원이 많지 않던 시절에도 부모는 아이에게 피아노를 배우게 했다. 넉넉한 환경은 아니었지만, 자녀가 가진 재능을 놓치지 않으려는 부모의 마음이었다. 그 시간 속에서 자란 아이는 훗날, 경남 창원을 대표하는 음악인으로 성장하게 된다.
경남뮤지컬단을 이끌고 있는 권안나 단장에게 음악은 자연스럽게 사람을 이끄는 경험이었다. 그녀는 중학교에 들어가 합창부 반장을 맡아 행사 무대에서 애국가를 부르기 위해 함께 움직였으며, 직접 지휘도 했다. 교회에서도 아이들에게 노래를 지도했다. 크리스마스 무대에는 아이들에게 발레를 가르쳐 올리기도 했다. 피아노를 제외하고 지휘와 안무, 연기를 정식으로 배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노래를 가르치고, 움직임을 맞추고, 작은 무대를 만드는 일을 자연스럽게 해냈던 것이다.
어린 시절 접했던 경험은 지금의 활동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권 단장은 피아노뿐 아니라 연극, 발레, 고전무용, 동화구연, 웅변 등 다양한 예술 활동을 접하며 자랐다. 하나의 장르에 머물지 않았던 경험은 훗날 그녀가 아이들에게 노래와 안무, 연기, 무대 표현을 함께 가르치는 바탕이 됐다. 경남뮤지컬단에 소속된 경남리틀싱어즈가 일반적인 어린이합창단의 형식에 머물지 않고, 표정과 움직임, 말과 호흡이 함께 살아 있는 무대를 만들어온 것도 이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학에서는 피아노를 전공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이어오던 지휘 활동은 잠시 뒤로하고, 피아노와 반주자로서의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다. 그러다 대학 4학년 때의 이른 결혼과 함께 창원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뒤, 권 단장은 지역 합창단 반주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낯선 도시에서 그녀가 다시 마주한 일도 결국 합창이었던 것이다. 피아노 앞에서 다른 지휘자의 손끝을 바라보던 순간, 그녀 안에 남아 있던 감각이 다시 깨어나기 시작했다. 의성의 어린 합창부 반장은 그렇게 창원에서 반주자와 부지휘자를 거쳐, 훗날 아이들의 무대를 만드는 사람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낯선 도시에서 실력으로 넓힌 자리, 그린쇼콰이어의 탄생
창원은 권안나 단장에게 익숙한 도시가 아니었고, 당시에는 피아노 전공자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그렇기에 권 단장은 여러 합창단의 반주를 맡으며 지역 음악계 안으로 조금씩 들어갔다. 낯선 지역에서 자신을 설명하는 가장 분명한 방법은 실력이었다. 그녀는 반주자로 머물지 않았다. 지휘자의 손끝과 합창단의 호흡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어린 시절부터 몸에 남아 있던 합창 지도의 감각을 다시 떠올렸다.
반주 활동은 부지휘자로 이어졌고, 부지휘자의 책임은 다시 공부로 이어졌다. 권 단장은 합창단을 더 잘 이끌기 위해 석사과정을 밟으며 지휘를 공부했다. 피아노 전공자로 출발했지만, 그녀 안에는 이미 사람의 소리를 모으고 무대를 완성하고 싶은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지휘 활동을 시작한 단체가 그린쇼콰이어였다. 2010년 창원에서 출발한 그린쇼콰이어는 일반적인 합창단의 형식에 머물지 않았다. 쇼와 합창을 결합한 ‘쇼콰이어’라는 이름처럼, 노래에 안무와 의상, 연기, 무대 연출을 더해 관객과 만나는 방식을 택했다.
이후 그린쇼콰이어는 창원과 경남을 무대로 꾸준히 정기연주회를 이어오며 성인 여성합창단의 활동 폭을 넓혀왔다. 매년 정기연주회를 통해 공연 수익금 일부를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기부하는 등 공연과 나눔을 함께 이어온 기록도 남겼다.
권 단장은 “그린쇼콰이어는 지휘자로서의 첫 본격 무대이자, 이후 경남리틀싱어즈와 경남뮤지컬단의 색깔을 만드는 중요한 단초가 되었어요. 노래만으로 무대를 채우는 대신, 표정과 움직임, 장면과 흐름을 함께 설계하는 방식은 훗날 아이들의 무대로 옮겨갔죠”라며 “경남리틀싱어즈가 가만히 서서 노래하는 합창단이 아니라, 말하고 움직이고 표현하는 리틀 쇼콰이어의 성격을 갖게 된 배경도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전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지역에 없던 형식의 무대를 만들었고, 이 경험을 아이들의 무대와 경남뮤지컬단의 작업으로 확장해 갔다.

아이들의 가능성을 무대에 세우다
권안나 단장이 아이들에게 눈을 돌린 것은 거창한 계획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어느 날 방송 매체에서 어린아이들이 무대에서 노래하고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창원에도 저만큼의 재능을 가진 아이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이라는 이유로 아이들의 가능성이 무대 밖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마음도 함께 생겼다. 그렇게 2006년, 권 단장은 아이들을 수소문해 모으기 시작했다. 출발은 일곱 명이었다. 노래를 가르치고 안무를 맞추며 작은 무대를 준비했는데, 반응은 예상보다 좋았다. 기존에도 지역에 어린이합창단은 있었지만, 소수의 아이들이 노래와 움직임을 함께 보여주는 무대는 당시 지역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형식이었기 때문이다.
경남리틀싱어즈는 권 단장이 가장 먼저 만든 어린이 단체로 자리 잡았다. 공연을 거듭할수록 지역 행사와 각종 무대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아이들이 무대에 서는 일을 단순한 공연 경험으로 보지 않았다. 연습실에서는 집중하지 못해 혼나기도 하고, 무대 뒤에서는 장난치며 쉬어가기도 하지만, 막상 무대에 오르면 관객과 눈을 맞추고 자신이 가진 것을 꺼내 보이는 시간이 된다. 그녀가 긴 시간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었던 이유다.
권 단장은 “아이들이 무대에 올라가 관객들과 눈을 맞추고 호흡하면서 자신 있게 표현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대견스럽고 예쁩니다. 힘든 점이 있어도 그 모습을 보면 다시 내려놓게 되고, 오히려 아이들에게 에너지를 받아오는 느낌을 받아요”라고 전했다. 그 말처럼 경남리틀싱어즈의 무대는 아이들에게만 필요한 시간이 아니었다. 권 단장 역시 아이들과 싸우고 웃고 다시 연습하며, 그 안에서 자신의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을 얻는다.
권 단장이 이 단체를 통해 아이들에게 기대한 것은 실력만이 아니었다. 선배들이 동생들을 가르치고, 동생들이 선생님보다 선배들의 말을 더 잘 따라가는 장면을 자주 보았다. 팀별로 연습 시간을 주면 큰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리더 역할을 맡았고, 작은아이들은 그들을 따랐다. 무대는 그렇게 노래와 안무를 익히는 공간을 넘어 관계를 배우는 자리가 됐다. 권 단장은 아이들이 경남리틀싱어즈를 통해 자신감과 책임감을 얻고, 훗날 어떤 자리에서도 자신이 맡은 일을 해내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랐다. 그녀가 아이들에게 집중해 온 이유는 결국 그 성장의 장면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아왔기 때문이 아닐까.

합창에서 뮤지컬까지, 더 큰 무대로 나아가다
권안나 단장의 관심은 경남리틀싱어즈의 활동에만 머물지 않았다. 아이들이 노래와 안무를 익히고 무대 위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더 넓은 공연 경험을 선물하고자 고민하게 됐다. 지역의 아이들이 뮤지컬을 접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지역을 이동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작품을 보기 어렵고, 직접 무대에 서는 일은 더더욱 쉽지 않았다. 권 단장은 이 간극을 창원에서 줄여보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한 작업이 아이들을 위한 뮤지컬 무대였다.
첫 시도는 ‘사운드 오브 뮤직’이었다. 그녀는 서울에서 공연을 본 뒤, 아이들에게도 이 작품을 경험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다. 뮤지컬을 전문적으로 배워온 사람은 아니었지만, 뮤지컬 작업은 그녀가 오래 해온 교육 방식과 닮아 있었다. 연출자와 협업하고, 필요한 부분은 스스로 공부하며 무대를 준비했다. 대극장에서 열린 첫 공연은 많은 관객을 만났고, 이후 권 단장은 해마다 아이들을 위한 뮤지컬 작품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경남리틀싱어즈를 시작점으로 삼았던 활동은 경남뮤지컬단이라는 큰 이름 아래 정리되기 시작했다.
권 단장은 “제가 뮤지컬을 잘 알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이 그 무대를 통해 또 다른 재능을 발견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방송 무대도 경남뮤지컬단과 경남리틀싱어즈의 이름을 더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권 단장은 SBS ‘싱포골드’ 출연을 통해 팀이 전국적으로 주목받았다고 회고했다. 아이들이 뛰고 움직이며 노래했지만, 음정과 호흡은 흐트러지지 않았고, 이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호평도 이어졌다. 권 단장이 지향해온 리틀 쇼콰이어의 색깔이 대중 앞에서 확인된 것이다. 그 이후 KBS 공연 요청으로도 이어졌고, 경남의 어린이 공연팀이 지역을 넘어 전국의 관객을 만나는 계기가 됐다.

20주년 이후, 경남뮤지컬단이 준비하는 다음 시간
무대를 바라보는 기준은 성과에만 머물지 않는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아이들에게 무엇이 남는지, 관객과 단원 사이에 어떤 마음이 오가는지를 더 오래 본다. 그래서 경남뮤지컬단의 활동에는 재능기부와 나눔의 시간이 꾸준히 이어졌다. 병원과 노인병원 공연, 군부대와 지역 행사,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함께한 활동 등은 아이들이 자신이 가진 재능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경험이 됐다. 권 단장은 아이들이 지금은 그 의미를 모두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시간이 지나 자신이 누군가에게 마음을 건넨 경험을 반드시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권 단장은 “공연의 화려함도 중요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마음과 관계를 남기는 예술을 하고 싶어요. 무대에서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 시간이 단원들에게도, 관객에게도 오래 남았으면 합니다”라고 피력했다.
이제 권 단장은 다음 세대도 준비하고 있다. 오랜 시간 아이들을 지도해온 만큼, 언젠가는 이 활동을 이어갈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경남리틀싱어즈와 경남뮤지컬단 안에서 성장한 제자들이 그 역할을 맡아주길 바란다. 이미 몇몇 졸업생에게서 가능성을 보았다. 동생들을 가르칠 때 자신과 비슷한 말투와 방식으로 이끄는 아이들, 무대의 흐름과 단체의 색깔을 몸으로 익힌 아이들이다. 권 단장은 그들이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와 후배들을 이끌어준다면 가장 자연스럽고 좋은 그림이 될 것이라고 희망했다.

올해 2026년은 경남리틀싱어즈가 20주년을 맞는 해다. 권 단장은 졸업생과 현재 단원들이 함께하는 자리를 준비하고 있다. 유학 중인 졸업생, 클래식과 뮤지컬을 전공하는 제자들, 지금의 아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지나온 시간을 나누는 형식이다. 9월에는 중국 청도에서 열리는 한중 청소년 문화예술제 초청 공연도 준비하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첫 해외 교류인 만큼 안전과 준비에 대한 부담도 크지만, 권 단장은 창원에도 이런 멋진 팀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최근에는 소프라노, 테너, 바리톤, 일렉첼리스트로 구성된 팝페라 그룹 ‘더 비보’를 창단했고, 국악 관현악단과 협업한 국악 뮤지컬 구상까지 더해지며 창원에서 시작한 아이들의 무대는 이제 다음 세대와 더 넓은 무대를 향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권안나 단장의 무대가 의미 있는 이유는 화려한 결과보다 오래 이어진 마음에 있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완성된 길을 보여주기보다, 무대 위에서 스스로를 확인할 시간을 마련해 왔다. 그 시간은 아이의 목소리와 표정, 움직임을 바꾸었고, 때로는 한 사람의 진로와 삶의 방향에도 영향을 남겼다. 한 사람이 오래 지켜온 연습실과 한 번의 무대가 아이의 가능성을 열 수 있다면, 권 단장이 만들어갈 다음 무대 역시 창원의 아이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이슈메이커 김남근 기자 issue8843@issuemak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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