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대희 ㈜인생뮤직 대표
사진=김남근 기자
- 생계와 교육 현장에서 다시 마주한 음악
- 음악으로 공간을 만들어온 인생뮤직 이야기
음악을 논할 때 흔히 재능과 감성, 무대와 성취의 언어로 접근한다. 그러나 음악을 삶의 한가운데 두고 오래 버텨온 사람일수록 질문과 답은 달라진다. 음악이라는 존재가 언제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지, 통제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무엇을 붙잡게 하는지, 그리고 기술이 아니라 치유로 작동하는 순간은 언제인지에 대한 문제다. 환경이 거칠수록 이 질문은 더 또렷해졌다. 무대는 짧고, 그 이후의 여운은 길다. 음악은 그사이를 오가며 말로 설득되기보다,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으로 증명되고 있다. 이러한 음악의 힘을 교육의 현장으로 끌어와 관계와 책임의 기준으로 정리해 온 인물이 있다. 무대 위의 성취 이후 공백을 지나, 가르치는 자리와 운영자의 위치를 오가며 음악이 사람과 조직을 어떻게 지탱할 수 있는지를 실천으로 보여온 권대희 ㈜인생뮤직(이하 인생뮤직)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이슈메이커가 그의 음악 인생을 함께 거닐어 보았다.


SBS ‘판타스틱 듀오 시즌2’ 양파 편 우승자 출신인 권대희 대표는 무대에서 노래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보이며, 이후 인생의 동반자가 될 음악적 철학을 처음으로 대중 앞에 선명하게 남겼다.
ⓒ ㈜인생뮤직
꿈보다 먼저였던 현실, 포기할 수 없었던 ‘음악’
권대희 대표가 음악을 처음 ‘꿈’으로 인식한 순간은 갑작스레 찾아왔다. 생계가 늘 우선이었던 환경에서 음악은 취미나 진로 이전에,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통로에 가까웠다. 유년 시절을 기초생활수급 가정에서 보냈고, 시각장애로 눈이 불편한 어머니와 함께 생활했다. 경제적 조건은 늘 선택에 제한을 두었고, ‘하고 싶은 일’보다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고민하고 스스로 찾아야 했다. 스무 살 무렵, ‘이제는 나도 일을 할 수 있겠구나’라는 현실 자각이 먼저 찾아왔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군 복무를 마친 뒤 그는 곧바로 생계를 위한 전선에 뛰어들었다. 전단지를 돌렸고, 수박 하역 현장에서 몸을 썼으며, 정화조 청소와 같은 고된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일이 일상이던 시기였다. 동시에 그는 금융 공부를 병행했다. 돈의 구조를 이해하지 않으면 삶이 계속 같은 자리에서 맴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시기 음악은 여전히 그의 주변을 맴돌 뿐이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불현듯 깨달은 사실은, 다른 일들과 달리 음악만큼은 반복과 수정이 가능했다. 그는 “노래는 한 번에 만족하지 못하더라도 노력을 통해 계속 고쳐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라고 회상하며, 음악이 자신에게 깊숙이 들어온 시기를 덤덤히 전했다.
그에게 음악은 감정의 해소나 재능의 증명이 아니라, 통제 가능한 영역에 가까웠다. 노력의 방향이 분명했고, 결과가 전적으로 운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점이 컸다. 그래서 그는 다른 선택지들이 막힐수록 음악 쪽으로 한 걸음씩 더 다가갔다. 생계를 위해 일을 하며 시간을 쪼개 노래를 연습했고, 음악을 ‘잘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계속 붙잡을 수 있는 수단’으로 다뤘다.
이러한 가치관은 음악을 통해 단번에 삶이 바뀌었다기보다, 버텨온 시간 속에서 음악이 유일하게 포기하지 않은 기준으로 남을 수 있게 했다. “다른 건 그만둘 수 있었지만, 노래는 끝까지 놓지 않았습니다”라고 힘주어 전하는 권 대표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과거 권대희 대표는 생계를 위해 새벽 시간 고깃집 바닥 닦는 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음악을 놓지 않기 위해 감당해야 했던 시간을 되돌아봤다.
ⓒ ㈜인생뮤직
스포트라이트 뒤에 마주한 시간
권대희 대표가 서울로 올라온 것은 스물여섯 살 무렵이었다. 음악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늦은 나이에 대학에 진학했고, 이 과정에서 우연히 SBS ‘판타스틱듀오2’에 지원해 양파 편 ‘우승’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무대는 분명 전환점이었다. 이후 공연이 이어졌고,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대의 시간은 길지 않았고, 그다음으로 펼쳐진 그의 인생은 모두의 예상과 달라지기 시작했다.
실력을 인정받으며 공연이 몰리던 시기, 그는 사람 앞에 서는 일이 점점 어려워졌다고 했다. 대인기피와 공황에 가까운 증상이 겹치면서, 무대는 더 이상 에너지를 주는 공간이 아니게 되었다. 그는 돌연 자취를 감췄다.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있다고 보였을 때의 선택이었지만, 도망에 가깝다는 자각이 있었다.
그러자 생계는 다시 그에게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로 돌아왔다. 용기를 내어 보컬 트레이너로 학원에 취업했다. 가르치는 일은 익숙했지만, 환경은 자신이 경험해 온 음악과는 결이 달랐다. 시스템과 방식이 맞지 않았고, 그 차이를 조정할 여유도 없었다. 그는 한 학원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옮겨 다녔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는 그 시기를 돌아보며, 문제의 상당 부분이 자신에게 있었다고 말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현장에 들어갔고, 기대와 현실의 간극을 감당하지 못했다는 과오를 시간이 지나 깨닫게 된 것이다.
경제적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학원 일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워졌고, 그는 다시 현장 일을 병행했다. 새벽 시간 고깃집 청소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무대와 트레이닝, 그리고 생계를 위한 노동이 뒤섞인 시간이 이어졌다. 음악은 여전히 삶에 있었지만, 중심이라기보다는 버티기 위한 수단에 가까웠다. 음악이 성취의 수단일 때와 생계를 떠받치는 수단일 때, 그리고 사람을 다시 만나게 하는 매개가 될 때의 차이를 가슴 깊이 뼈저리게 새겼다. 이후 그가 교육과 운영을 동시에 고민하게 되는 배경에는, 바로 이 시기의 경험이 자리하고 있다.




권대희 대표가 동탄에 처음 문을 열었던 인생뮤직의 첫 공간은 음악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머물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두었고, 이후 권 대표가 지향하게 될 ‘부담 없이 오래 음악을 이어가는 방식’의 출발점이 됐다.ⓒ ㈜인생뮤직
‘잘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던 시간
계속된 이동 끝에 권대희 대표는 신촌의 한 음악 학원에 자리를 잡게 됐다. 정규 수업보다는 동아리 형태로 운영되던 공간이었고, 분위기는 비교적 느슨했다. 심적 부담이 한결 덜어지는 구조였다. 그리고 그 안에서 그는 이전과 다른 가능성을 보았다. 수업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네 명으로 시작한 수강생이 스무 명으로 늘었고, 시간이 지나자 마흔 명 가까이 모였다. 특별한 홍보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먼저 돌았다. ‘가르치는 능력’보다 ‘공간이 유지되는 방식’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누가 오래 남는지, 왜 떠나는지, 어떤 분위기에서 사람들이 다시 오고 싶어 하는지를 현장에서 체감했다. 그는 이때 처음으로 음악 교육을 개인의 역량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운영 문제로 바라보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는 시간이 이어지자 동업 제안도 있었다. 이미 형성된 수강생 규모와 운영 구조를 함께 가져가자며 더 발전시키자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정은 쉽지 않았지만, 그에게는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남의 틀 안에서 역할을 맡는 대신, 처음부터 책임을 지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권 대표는 “그때 처음으로 ‘나만의 것’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라며 “단순히 공간을 갖겠다는 뜻이 아니라, 운영의 기준을 스스로 세워야겠다는 판단이 들었고, 레슨 방식, 관계의 거리, 수강생을 대하는 태도까지 모두를 포함해 새로운 음악 아카데미를 만들어야 한다는 확신이 들게 되었습니다”라고 전했다.
2019년 3월 무렵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준비에 들어갔다. 몇 달간 공간을 알아보고, 필요한 비용을 계산했다. 빠르게 시작하기보다 감당이 가능한 규모를 먼저 정했다. 그해 7월 동탄에 문을 열기까지의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그 안에는 그동안의 시행착오와 관찰이 응축돼 있었다. 음악을 중심에 두되, 사람이 모이고 유지되는 구조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이때부터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첫 공간에서 마주한 현실의 숫자들
인생뮤직의 첫 시작은 2019년 7월 19일이었다. 시작 자본은 300만 원. 보증금 잔금은 월 분납으로 부탁했고, 공간에 필요한 가구와 장비는 최대한 비용을 들이지 않는 방식으로 채웠다. 버려진 가구를 손봐 쓰기도 했고, 기존에 갖고 있던 악기를 학원에서 활용했다. ‘그럴듯한 시작’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에게 중요한 것은 버틸 수 있는 환경을 먼저 만드는 일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개원 첫 달 매출은 16만 원, 수강생은 단 한 명이었다. 기대와는 다른 숫자였지만, 그는 이 결과를 실패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원인을 찾았다. 홍보에 무지했고, 운영에도 미숙한 자신을 발현했다. 그는 그때부터 다양한 소셜 채널을 활용해 독학으로 마케팅과 디자인, 영상 제작, 블로그 운영을 하나씩 익혔다. 그렇게 시야가 넓어질수록 학원을 운영한다는 것은 음악만 잘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히 보이기 시작했다.
공간을 채우는 방식에서도 그는 기존 학원과 다른 선택을 했다. ‘선생님’과 ‘수강생’이라는 호칭을 쓰지 않았다. 대신 형, 오빠, 이름을 불렀다. 위계를 낮추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그만큼 오해도 따랐다. 학원답지 않다는 평가와 검열에 가까운 시선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 방식을 바꾸지 않았다. 사람들이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 먼저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계가 사라진 자리는 결국 대표가 감당해야 했다. 문제가 생기면 피할 수 없었고, 관계의 균형이 깨질 때마다 직접 개입해야 했다. 기준을 낮춘 만큼, 책임의 밀도는 더 높아져야 했다. 그러자 학원에는 서서히 사람이 모이기 시작했다.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성장하지는 않았지만,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이 생길 정도였다. 그는 이 변화를 통해 ‘잘 짜인 커리큘럼보다, 공간을 운영하는 태도가 사람을 붙잡는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인생뮤직은 자체 공연과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수강생과 지역의 음악 애호가들이 무대에 서고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자리를 꾸준히 마련하며, 음악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 ㈜인생뮤직
함께 가는 일의 무게를 배우다
학원이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권대희 대표가 가장 자주 마주한 문제는 ‘내부의 사람’이었다. 함께 시작했던 이들과의 균열, 기대와 책임의 불균형, 관계에서 비롯된 갈등이 생각하지 못했던 포인트에서 발생한 것이다. 그럼에도 문제를 외부로 돌리지는 않았다. 갈등이 생길 때마다, 운영자로서 자신의 판단을 먼저 되돌아봤다.
즉흥적인 결정과 빠른 실행은 초반에는 장점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늘고 조직이 커질수록 같은 방식은 한계를 드러냈다. 그는 “이제는 예전처럼 하면 안 되겠다고 느꼈습니다”라고 말하며, “리더의 역할은 앞에서 끌고 가는 사람이 아니라, 여러 선택의 결과를 함께 감당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특히 강사들과의 관계에서 변화가 컸다. 그는 강사들을 관리의 대상으로 보기보다, 과거의 자신과 겹쳐 보았다고 설명했다. 무대와 생계,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던 시절의 자신을 떠올리며, 지시하는 위치보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을 택했다. 이 선택은 조직을 조금은 느리게 만들었지만, 대신 오래갈 수 있는 방향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후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기준은 분명해졌다. 실력과 경력보다 먼저 보는 것은 사람의 태도였다.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지, 관계 안에서 감사함을 표현할 수 있는지의 여부였다. 그는 이 기준이 무너지면 어떠한 시스템도 유지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리더십은 기술이 아니라,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의 문제라는 결론도 이때부터 정립되기 시작했다.
인생뮤직이 써 내려가는 선택의 흔적들
권대희 대표의 판단은 학원의 운영 구조로 그대로 이어졌다. 인생뮤직은 성인 실용음악 학원으로, 보컬을 중심으로 피아노와 기타, 드럼, 베이스 등 밴드 구성 악기를 폭넓게 다룬다. 작곡과 녹음까지 음악의 전 과정을 경험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지만, 이 학원의 특징은 커리큘럼의 다양성보다 운영 방식에 있다.
수업은 음악이 전부가 아니다. 연습 공간을 중심에 두고, 시간의 속박에서 벗어나 수업과 개인 연습, 공연 경험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도록 구조를 만들었다. 음악을 배우는 시간이 특정 요일과 시간에 갇히지 않도록 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이는 성인 수강생들이 음악을 중간에 놓지 않게 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그는 판단했다.
정기 공연 역시 경쟁을 위한 장치가 아니다. 일부 잘하는 사람만 서는 무대가 아니라 연습의 결과를 한 번쯤 꺼내보는 과정으로 설계됐다. 무대 경험을 통해 자신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확인하고, 다시 연습으로 돌아갈 수 있게 만드는 순환 구조다.
커리큘럼 역시 고정된 트랙을 따르지 않는다. 기초 레슨을 중심으로 하되, 합주나 편곡, 녹음 등으로 자연스럽게 확장할 수 있도록 선택지를 열어둔다. 각자의 속도와 목적에 따라 경로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전제다. 그는 ‘성인 학습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완성도가 아니라, 지속 가능성’이라고 덧붙였다.
이 구조는 자연스럽게 인생뮤직의 경쟁력으로 이어졌다. 단기간 성과를 앞세우기보다, 사람들이 오래 머물며 관계를 맺는 공간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그 결과 현재 인생뮤직은 전국에 직영과 가맹을 포함한 16개의 학원을 운영하는 법인 기업으로 거듭났다.
이러한 인생뮤직의 운영 방식은 권 대표의 리더십이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지점이다. 사람 문제를 피해가지 않고 직접 부딪히며 자신을 돌아보았던 선택들이 결국 지금의 학원 구조의 뼈대가 됐다. 음악을 통해 조직을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조직이 어떻게 음악을 대하게 만들 것인지를 고민해 왔다. 그 고민의 결과가 지금의 인생뮤직이다.
인생뮤직은 권대희 대표가 음악을 대해온 방식이 그대로 옮겨진 공간이다. 빠른 성과보다 오래 이어지는 관계를 먼저 생각했고, 잘 가르치는 것보다 다시 오고 싶은 환경을 만들고자 했다. 음악을 배운다는 행위가 부담이나 경쟁으로 남지 않도록, 일상의 한 부분으로 이어지기를 희망했다.
“음악이 인생을 바꾼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음악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는 있었습니다. 앞으로 저는 물론 음악을 사랑하는 많은 이가 음악과 함께 살아가는 시간이 조금 더 오래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슈메이커 김남근 기자 issue8843@issuemak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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