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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편향 논란에 수뇌부 사임

매거진

by issuemaker 2025. 12. 10.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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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편향 논란에 수뇌부 사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설 짜집기로 궁지 몰려
사미르 샤 회장 “판단 오류에 사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연설을 의도적으로 짜깁기해 방영했다는 논란이 영국 공영방송 BBC를 강타했다. 공정성 시비 속에 팀 데이비 사장과 데버라 터네스 BBC 뉴스·시사 총책임자 등 수뇌부는 사임을 표명했다. 내부 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일각에선 BBC의 논조를 손보려는 보수 진영의 압력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된다.

ⓒElliott Brown/Flickr



“의회로 가자”·“지옥처럼 싸우자” 이어 붙여 한 문장처럼
이번 논란은 지난 11월 4일 영국 보수 일간지 텔레그래프의 기사 ‘유출된 메모를 통해 트럼프에 대한 BBC의 편견이 드러나다’에서 시작됐다. 해당 기사는 BBC ‘편집 지침 및 기준 위원회(EGSC)’의 외부 독립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던 마이클 프레스콧이 BBC 이사회에 보낸 서한을 공개했다. BBC가 지난해 10월 ‘트럼프: 두 번째 기회?’ 특집 다큐멘터리에서 미 의회 폭동이 일어난 2021년 1월 6일 트럼프의 연설을 의도적으로 편집했다는 의혹이 주된 내용이었다. 여기서 프레스콧은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 세 부분을 한 문장처럼 보이도록 짜깁기해 그가 의회 폭동을 선동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BBC 아랍어 서비스가 반유대주의적 성향 기고자들의 글을 실었다고도 비난했다.


  논란이 커지자 영국 하원 미디어 담당 위원회는 BBC가 프레스콧의 주장에 대해 설명하라고 요구하고, 의회 답변 기한을 하루 앞두고 데이비 사장과 터네스 국장은 사임을 발표했다. 이를 두고 영국 진보 성향 일간지 가디언은 두 사람의 사임이 “프레스콧의 추가 공격으로부터 BBC를 보호하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프레스콧의 의혹 제기가 정치적 목적을 지녔다고 보고, 추가 빌미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 BBC가 주요 인사 사임이라는 고육지책을 택한 것이란 분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연설을 의도적으로 짜깁기해 방영했다는 논란이 영국 공영방송 BBC를 강타했다. ⓒBen Sutherland/Flickr



  실제 프레스콧은 영국 보수 진영에 가까운 인사로 분류되는데, 가디언은 의혹 제기 이후 영국 보수 정치인들이 앞다퉈 BBC 비난에 나선 점에 주목했다. 특히 보리스 존슨 전 총리는 지난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를 통해 데이비 사장이 이 사태에 관해 설명하거나 사임해야 한다며 압박 수위를 높인 바 있다. 캐롤라인 레빗 미 백악관 대변인도 BBC를 “좌파 선전 기계”라고 일컫는 등 비난에 가세하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내는 사과문이 발표되기 몇 시간 전, BBC가 다른 방송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을 잘라 붙여 내보냈다는 의혹도 나왔다. 텔레그래프는 BBC가 2022년 6월 9일 방송된 생방송 ‘뉴스나이트’에서 작년 다큐멘터리에서 내보낸 방식과 유사한 방식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이 편집돼 방영됐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설에서 약 한 시간 간격으로 나온 발언들을 연결해 마치 지지자들에게 의회로 가서 “지옥처럼 싸우자”고 촉구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는 것이다. 당시 믹 멀베이니 전 백악관 비서실장은 방송에서 “당신들 영상은 실제 발언 내용을 짜깁기 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진행자는 다음 발언으로 넘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성 시비 속에 팀 데이비 사장과 데버라 터네스 BBC 뉴스·시사 총책임자 등 수뇌부는 사임을 표명했다. ⓒYTN 뉴스화면 갈무리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BBC 수뇌부의 사임 발표 직후 트루스소셜에 “BBC 수뇌부가 내 훌륭한 1월 6일 연설을 조작했다가 그만두거나 잘렸다”며 “이들이 대선 저울에 발을 대려 한 아주 부정직한 사람들”이라고 썼다. 한편 사미르 샤 BBC 회장은 영국 의회에서 “연설이 편집된 방식이 (지지자들에게) 폭력적 행동을 직접 촉구했다는 인상을 줬다”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판단 오류에 사과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만 BBC 측은 당시 방송이 트럼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하지는 않았다며 배상은 거부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 변호인단은 BBC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거짓된 언급을 철회하고 사과하지 않으면 10억 달러의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통보했다.

 

여러 차례 중립성 논란 휘말려
BBC는 영국 시청자들이 매년 내는 가구당 175.5파운드의 수신료로 운영된다. BBC 헌장은 공익을 위해 정확하고 공정한 뉴스를 제공하는 것을 자사의 사명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BBC는 여러 차례 중립성 논란에 휘말린 적이 있다. 지난 2023년에는 리처드 샤프 당시 BBC 이사회 의장이 존슨 전 총리의 거액 대출을 도왔던 이력을 공개하지 않았다는 점이 밝혀져 사임했고, 정부의 난민 정책을 비판한 축구 프로그램 진행자인 전직 축구 스타 게리 리네커를 하차시켰다가 일부 시청자들의 ‘보이콧’ 반발에 직면하기도 했다.


정확하고 공정한 뉴스를 제공하는 것을 자사의 사명으로 규정하는 BBC는 최근 들어 여러 차례 중립성 논란에 휘말렸다. ⓒPixabay​


  이에 더해 지난 10월 방송규제 당국인 오프콤(OfCom)은 BBC가 가자지구 관련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을 하마스 관리의 아들에게 맡긴 사실을 사전에 공개하지 않아 방송 규정을 중대하게 위반했다고 판정했다. 올해 7월에는 글래스턴베리 록 페스티벌에서 가수들이 공연 도중 “IDF(이스라엘군)에 죽음을”과 같은 과격한 구호를 외쳤는데 BBC가 중계를 중단하지 않아 논란이 일었다. 성 소수자 관련 논조도 논란이었는데, BBC 내 성 소수자 기자들이 타고난 성별과 다른 ‘젠더 정체성’에 비판적인 보도를 거부하면서 사내 검열이 벌어지고 있다는 주장이 여러 번 제기됐다.


  하지만 이런 문제가 나올 때 수뇌부가 철저하고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하면서 기관 전체가 편향성 논란을 피하지 못하게 됐다는 자성은 방송국 내부에서도 나온다. 케이티 라잘 BBC 문화·미디어 에디터는 ‘BBC 수뇌부의 균열을 보여주는 지진 같은 순간’이라는 해설 기사에서 BBC가 대중을 오도하려는 의도는 없었으나 다시 살펴보니 시청자에게 연설의 두드러지는 부분을 확실히 알리려 몇 가지 처리를 했다는 내용으로 사과문을 준비했다고 소식통들을 인용해 전했다. 그러나 이사회가 1주일간 사과문 발표를 막았고 이에 보도 부문 책임자인 터네스는 좌절하게 됐으며, BBC 안팎의 많은 이가 이런 대응 실패를 중대한 실수로 본다고 라잘 에디터는 전했다. 터네스 CEO는 사임을 표명한 뒤 취재진에게 “책임지고 사임하지만 BBC 뉴스에 제도적 편향성은 없음을 분명히 밝히고 싶다”며 “우리 기자들은 부패하지 않았고 공정성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변호인단은 BBC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거짓된 언급을 철회하고 사과하지 않으면 10억 달러의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통보했다. ⓒOfficial White House Photo by Daniel Torok/Flickr


  하지만 보수 성향 정치 지도자들은 BBC 전체의 편향성을 고치려면 갈 길이 멀다고 주장했다. 보수당의 케미 베이드녹 대표는 “훨씬 깊이 흐르는 심각한 결함이 있다”며 “두 명의 사임으로 제도적 편향성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익 성향 영국개혁당의 나이절 패라지 대표도 이번이 BBC의 마지막 기회라며 이번 사임이 대대적 개혁의 시작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정성을 의심받을 만한 일련의 사건으로 논란을 자초한 만큼 BBC가 자체 노력으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진보 성향 일간 가디언은 해설 기사에서 “최근의 논란은 정부가 2027년까지인 (BBC) 왕실 헌장 재검토를 앞두고 나왔다. 정부는 재검토를 통해 BBC의 독립성 보호와 동시에 책임감 강화를 위한 구조를 만들려 한다”며 “BBC는 정치인, 자사 기자, 무엇보다 대중의 무너진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간 더타임스도 “BBC는 문화전쟁을 극복하는 대신 일정 부분 동참해 위험을 자초했다”며 “어떤 구조와 편집상 결함이 BBC를 대표성 없는 집단사고에 취약하게 했는지 철저히 검토해야 비판을 이겨낼 수 있다. BBC만이 스스로 구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슈메이커 손보승 기자 rounders23@issuemak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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