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구독 유도해 ‘록인’ 효과 발휘
스포츠 중계 ‘무료’라는 인식은 옛말
세계 스포츠 산업이 직면한 가장 큰 화두는 ‘중계권’이다. 최근 몇 년간 해외 주요 리그의 중계권료는 천정부지로 올랐다. 그러면서 치열한 경쟁 끝에 중계권을 확보한 방송사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체는 수익을 내기 위해 중계 유료화에 나서고 있다. 이제 스포츠 중계도 영화나 드라마처럼 돈을 주고 봐야 하는 시대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OTT 플랫폼 치열한 투자 경쟁
과거 한국에서 스포츠 중계는 ‘공짜’라는 인식이 강했다. 적게는 1만 원 미만의 케이블TV만 가입해도 한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영국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나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중계를 제한 없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2022년 당시 EPL 국내 중계권을 가진 스포티비가 손흥민이 뛰는 토트넘 경기를 월 1만 원가량 돈을 내야 하는 ‘스포티비 나우·프라임’에서만 중계하면서 국내에 본격적인 스포츠 OTT 구독 시대가 열렸다.
한국 프로야구(KBO) 역시 티빙이 지난해 중계권을 확보하기 전에는 지출 없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티빙이 KBO 리그 유무선 중계권 사업 계약을 정식으로 체결하면서 프로야구 유료화 시대를 열었다. 이후 티빙은 MAU(월간활성이용자수) 731만 명으로 당시 기준 역대 최고를 기록하는 성과를 거뒀다.

스포츠 중계권이 OTT 플랫폼을 넘어간 사례는 야구뿐만이 아니다. 올해 3월 쿠팡플레이가 2025~26시즌부터 6년간 총 4,200억 원에 프리미어리그 독점 중계권을 확보했다. 이외에도 쿠팡플레이는 독일 분데스리가, 스페인 라 리가, 프랑스 리그1 등 해외 축구는 물론 미국프로농구(NBA)와 프로풋볼리그(NFL), F1 등 다양한 종목을 중계 중이다. 최근에는 손흥민이 이적한 로스앤젤레스 풋볼클럽(LAFC)의 MLS 전 경기 중계권도 확보했다.
2022년부터 스포츠 중계에 뛰어든 쿠팡플레이는 유럽의 유명 축구 구단을 한국에 초청하는 쿠팡플레이 시리즈와 2024 MLB 서울시리즈 등을 중계하면서 스포츠 콘텐츠의 유입 효과를 톡톡히 봤다. 이를 바탕으로 쿠팡플레이는 부분 유료화에 나서 ‘스포츠 패스’를 도입하며 수익화에 힘을 싣는 모양새다.
글로벌 OTT 플랫폼들의 스포츠 중계권 투자 경쟁은 일찌감치 뜨겁게 달아올랐다. 넷플릭스는 미국 프로레슬링(WWE)의 프로그램인 ‘로우(RAW)’의 10년 독점 중계권을 따내기 위해 50억 달러를 투자했고, 애플TV는 미국프로축구 메이저리그 사커(MLS) 10년 독점 중계권에 25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아마존 역시 미국프로농구(NBA) 중계권을 위해 11년간 약 200억 달러를 쓰기로 했다. 유튜브도 마찬가지로 NFL 일요일 경기를 7년 독점 중계하기 위해 140억 달러를 투자했다. 파라마운트는 7년간 총 77억 달러를 들여 UFC(종합격투기) 중계권을 따냈다. 이처럼 스포츠 유료 중계가 보편적인 미국에선 팬들의 부담이 국내보다 더 크다. 4대 프로 스포츠에 MLS나 유럽 축구까지 챙겨 보려면 한 달에 13만 원 정도를 써야 한다.

개인 방송인이 중계권 확보하는 사례도
스포츠 중계권 투자 급증의 배경에는 OTT 업계의 구조적 변화가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효과로 큰 폭으로 성장했던 OTT 산업은 성숙기를 맞이했다. 하지만 콘텐츠 고갈과 과도한 제작 비용 등 고질적인 문제가 찾아왔고, 새로운 돌파구로 스포츠 콘텐츠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실시간 소비’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정기적인 시청자 유입을 보장할 수 있고, 특히 6개월 이상 지속되는 특정 리그 경기 중계는 ‘록인(Lock-in)’ 효과를 발휘해 구독자를 장기간 플랫폼에 묶어두는 강력한 수단이 된다. 더욱이 실시간성 때문에 다른 장르 대비 광고 회피 가능성도 낮다.
문제는 돈 있는 팬만 볼 수 있는 접근성이다. 중계권료에 들어가는 돈이 많아질수록 특정 스포츠를 중계하는 OTT 시청료 역시 높아질 수 있어서다. 사각지대도 발생한다. 한 리그를 보기 위해 여러 OTT에 가입해야 하는 ‘파편화’ 현상이 나타나며 디지털 소외 계층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이에 스포츠 경기의 보편적 시청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실제 미국 의회에선 최근 스포츠 중계 ‘블랙아웃’ 금지법이 발의되기도 했다. 특정 지역에서 특정 경기를 생중계로 시청하는 것을 막는 제도인데, 이를테면 OTT를 구독해도 지역 방송국을 위해 지역 프로팀 경기를 송출하지 않아 해당 팬들은 케이블TV로만 봐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한편 이런 가운데 해외에서 흥미로운 변화도 감지되고 있다. 최근 개인 유튜버나 소규모 크리에이터가 직접 스포츠 경기 중계권을 구매해 방송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프로 스포츠는 방송사가 중계한다는 상식이 깨지고 있는 셈이다.
가장 상징적인 사례는 브라질의 인기 스트리머 카지미루 미겔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카지TV’다. 2022년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기간 일부 경기의 디지털 중계권을 확보한 일이 있었는데, 전통 방송사가 아닌 개인 브랜드 채널이 월드컵 전 경기를 무료로 송출하게 된 건 이때가 세계 최초였다. 대규모 시청자를 모은 그는 곧이어 2023년 여자월드컵, 분데스리가 브라질 내 디지털 중계권, 프랑스 리그1 브라질 중계권, 심지어 2026년 북중미 월드컵 브라질의 전 경기 중계권까지 확보했다.
여기에 더해 영국 축구 유튜버 마크 골드브리지는 2025/2026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 금요일 경기 중 20경기를 생중계할 수 있는 공식 중계권을 얻었다. 지난 4년 동안 영국에서는 유료 스포츠 채널인 스카이스포츠가 모든 경기를 독점 중계했으나 이번에 계약이 끝나면서 독점권을 내려놓게 됐다. 금요일 경기는 골드브리지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댓츠 풋볼’과 영국 공영방송사 BBC가 무료로 중계하고, 일요일 경기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아마존프라임비디오에서 유료로 제공된다.
유럽 주요 리그가 개인 유튜버에게 중계권을 허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전통적인 미디어에서 벗어나 디지털 미디와 협력을 시도한 사례는 최근 들어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스페인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가(라리가)는 영국 스포츠 팟캐스트 채널 ‘더 레스트 이즈 풋볼’과 3년 계약을 체결하고 모든 리그 게임의 하이라이트 영상을 공식 중계할 수 있는 독점 권한을 허용한 바 있다. 제작사 ‘골행거’가 만든 해당 채널은 기본적으로 오디오를 기반으로 하지만, 최근에는 유튜브와 스포티파이 등의 플랫폼을 통해 영상이 함께 제공되는 비디오 팟캐스트 형식으로도 운영하고 있다.
이 같은 사례가 가능해진 배경에는 창작자와 전문 에이전시의 결합이 있다. 카지TV는 개인 브랜드이지만, 실제 운영은 스포츠 마케팅사 ‘라이브모드’가 함께한다. 중계권 협상과 제작 등 복잡한 업무를 에이전시가 뒷받침하면서 창작자는 브랜드와 팬덤에 집중한다.
개인 채널로 중계권이 확장되고 있는 이유는 전통 방송을 잘 보지 않는 젊은 세대에게 친숙한 플랫폼을 활용해 시청자층을 넓히겠다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채팅과 리액션 등 방송사가 제공하지 못하는 쌍방향성이 매력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분데스리가 인터내셔널의 피어 노베르트 최고경영자(CEO)는 “전통적인 방송사와 콘텐츠 크리에이터를 결합해 진일보한 경기 시청 환경을 마련했다”며 “이로써 더 많은 시청자를 아우르고, 각 팬이 본인에게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경기를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러한 스포츠 중계권 시장의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도 지켜볼 부분이다.
이슈메이커 손보승 기자 rounders23@issuemak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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