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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인물 - 외식산업 경영인 부문] 조준모 몽탄(夢灘) 대표

이슈 인터뷰

by issuemaker 2021. 5. 6.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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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게 배인 짚불 향에 담긴 ‘맛’과 ‘멋’

 

과거의 외식업(外食業)과 요식업(料食業)은 현재 외식산업(外食産業)으로 귀결된다. 경영자의 개성과 점포의 분위기, 지역 소상권을 지향하고 전통과 경험을 중시하던 형태에서 효율성을 높이고 시스템 수립을 통한 상권의 지역성 탈피, 최신 트랜드 반영,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산업의 형태로 진화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외식업이 하나의 사업에서 산업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변화의 흐름에 맞춰 남들이 가지 않았던 새로움에 도전하며 외식산업의 트렌드세터(Trend Setter)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조준모 몽탄(夢灘) 대표와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조준모 몽탄(夢灘) 대표
사진=김남근 기자
 

맛에 관한 모든 감각 자극
#용산맛집, #삼각지맛집, #이영자맛집, #짚불, #우대갈비. SNS와 크리에이터, 셀럽들을 통해 자타공인 맛집으로 인정받으며 2021년 현재, 서울에서 가장 핫한 맛집 중 하나로 자리 잡은 몽탄(夢灘)과 관련된 해시태그다. 적산가옥(敵産家屋)에 자리 잡기를 결정하고 1년에 가까운 준비 기간을 거쳐 ‘짚불’과 ‘우대갈비’라는 새로운 조합을 탄생시킨 조준모 대표의 집념의 결과물이다. 
  메뉴를 결정한 후 입지를 선정하고 계약 후 단시간에 입점해 임차료를 최소화하는 일반적인 방법과는 반대로 시작이 남달랐던 몽탄은 가게 오픈 후 골목의 상권을 뒤바꿀 정도로 삼각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식당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입소문과 SNS를 통해 유명 맛집으로 등극한 몽탄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주춤한 외식시장의 현실에서도 매일 웨이팅이 있을 정도로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몽탄이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짚불’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소갈비를 짚불로 구워 먹는다는 생각을 한 이들이 얼마나 있으랴.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어디선가 맡아보았을 법한 향이고, 밀레니얼 이전 세대들에게는 어렸을 적 한 번쯤은 맡아보았던 추억인 짚불의 향을 말이다. 조 대표는 바로 이 ‘향’에 집중했고, 결국 대중들의 감성을 맛과 향, 그리고 비주얼과 공간이 주는 특별함을 통해 울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

  우대갈비의 탄생도 특별했다. 국내 최고의 숙성육 전문가 중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는 최정락 셰프(마스터JL)가 조 대표에게 우대갈비를 추천한 것이다. 처음 우대갈비를 보았을 때 당시 조 대표는 큰 감흥이 없었지만, 적산가옥이 주는 분위기와 짚불의 향과 어울리는 아이템이 무엇일까라는 깊은 고민을 하던 중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아이템으로 우대갈비가 생각났다. 최정락 셰프 추천과 조 대표의 번뜩임이 없었다면, 우대갈비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조 대표는 “정해진 음식을 어떠한 공간에서 판매하는지가 아니라 정해진 공간에서 어떠한 음식을 판매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저만의 사업 구상 방식이 다소 생소해 보일 수도 있지만, 공간이 주는 심미적(審美的) 요인과 그 공간에 담길 음식의 조화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이 방식을 고수하고 있고, 앞으로도 고수해나갈 것입니다”라며 “사람의 오감(五感) 중 맛과 관련된 모든 감각을 자극하고,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했던 감각을 일깨워줌으로써 보다 특별한 맛의 경험을 보다 많은 이들에게 전해나갈 것입니다”라고 힘주어 전했다.



몽탄(夢灘)은 적산가옥(敵産家屋)에 자리 잡기를 결정하고 1년에 가까운 준비 기간을 거쳐 ‘짚불’과 ‘우대갈비’라는 새로운 조합을 탄생시킨 조준모 대표의 집념의 결과물이다.
ⓒ 몽탄(夢灘)
 

몽탄만의 성공 방정식
조준모 대표는 2015년 충정로에서 돼지고깃집 두툼으로 시작해 2018년 짚불 우대갈비 몽탄을 삼각지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후 최근 남영동에 한우 암소 등심주물럭집 초원을 연착륙시키며 외식산업계의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두툼과 몽탄, 초원 브랜드의 여세를 몰아 현재는 김직 MHN F&B Inc. 대표와 함께 몽탄의 법인화를 추진 중에 있으며, ㈜오뚜기와의 협업을 통해 1인 가구를 위한 볶음밥과 된장찌개 등의 HMR(가정대용식) 제품군을 개발 중이다. 올해 초, 코로나 팬데믹 이후의 흐름에 맞춰 현대백화점과 협업해 더현대 서울에 입점한 이후 현대백화점 투홈과도 콜라보하며 HMR과 RMR(레스토랑 간편식) 시장으로 진출한 경험을 발판삼아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것이다. 다만, HMR과 RMR 제품들이 매장에서 직접 먹는 맛을 완전히 충족시키기 어렵다고 판단해 현재 보완책을 마련하는 중이며, 빠르면 이달 중 맛을 보완한 제품을 다시 선보일 예정이다. 나아가 김재균 뜨락, 행진 대표와 신재우 금돼지식당 대표와 힘을 모아 ‘코리아미트클럽’(KMC)을 출범시키며 신당동 ‘하니칼국수’, 더현대서울 푸드코트에 입점한 ‘수티’, ‘영동장어’ 등 새로운 브랜드를 탄생시키고 있고, 이른 시일 안에 제주도로 사업영역을 넓힐 계획임을 밝혔다.

  조 대표는 “그동안 외식산업에서의 경험과 온라인 쇼핑몰 사업 등의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HMR이나 밀키트의 흐름이 온라인을 통해 시장의 장벽이 허물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라며 “오프라인에서 브랜드를 성장시켜나간다는 것은 제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처럼 너무나 즐겁고 보람된 중요한 포지션이지만, 온라인 시장으로의 변화는 불가피한 상황이 도래했기에, 몽탄 역시 온라인 외식업에 보다 기민하게 대처해 대한민국 외식산업의 경쟁력을 세계에 알리는 데 일익을 담당할 것입니다”라고 청사진을 그렸다.

ⓒ 몽탄(夢灘)
 

고깃집 창업을 꿈꾸게 된 계기가 특별하다고 들었다.
  “유년 시절 유복한 가정에서 성장해오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아버지와 이별로 인해 가세가 기울었다. 집에 빚이 많아졌고, 어머니는 그 빚을 갚기 위해 고깃집을 시작하게 됐다. 당시 어머니께서 채권자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았지만, 집 근처에 있던 작은 상가만큼은 남겨달라고 간청을 하셨다. 이마저도 내어놓는다면 빚을 갚을 길이 없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이 상가에서 고깃집을 시작하게 됐는데, 이후의 과정이 나에게는 특별했다. 어머니는 매일 일찍 일터로 나가셔서 밤늦게 돌아오셨다. 자연스레 가정을 돌보기가 힘드셨기에 거의 매일 가게에서 남은 고기와 김치를 가져오셨다. 본의 아니게 가세는 기울었지만, 고기는 정말 풍족하게 먹었던 것 같다. 불행 중 다행인 점은 이 고기가 질리지 않고 항상 맛있었다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중학교에 진학한 나는 어머니의 고깃집에서 불판을 닦고 음식을 나르며 일손을 도왔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고깃집 창업의 꿈을 키우게 됐다”

 

실제로 창업까지 이뤄졌나?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첫 창업은 의류 관련 인터넷 쇼핑몰이었다. 군대 제대 후 돌연 ‘나도 이제 다른 것도 해봐야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닷컴버블이 막 끝나가던 시점 의류 쇼핑몰 사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당시 많은 주변 분들이 ‘누가 옷을 인터넷으로 사서 입느냐’라는 우려를 하셨지만, 나는 이들의 이 같은 걱정을 잠식시키고자 조금은 다르게 쇼핑몰 사업에 접근했다. 시장조사를 통해 당시 인터넷 쇼핑몰 폐업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됐던 ‘재고 관리’를 해결하고자 주변 인맥을 통해 ‘제품 사입 후 판매’가 아닌 ‘제품 렌탈 후 주문 판매’ 전략을 펼쳤다. 제품을 빌려 사진을 찍은 후 온라인 쇼핑몰에 등록, 주문이 들어오는 데로 소량을 사입해 제품을 배송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재고로 인한 손실이 없다 보니 자연히 매출은 상승곡선을 그렸다. 하지만 함께 동업하던 친구와의 문제로 약 8개월 만에 사업장의 문을 닫게 되었다”

ⓒ 몽탄(夢灘)
 

첫 창업이 실패로 돌아간 후 상실감도 컸을 것 같다.
  “당시의 경험을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것을 배웠고, 지금의 신규 사업을 진행함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에는 매우 힘들었다. 다시 어머니의 가게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약 7년 정도 어머니와 함께했다. 이 과정에서 결혼도 했고 행복한 순간들이 많았다. 하지만 앞으로 나와 내 가족들의 미래를 그려보니 한시라도 빨리 독립해 내 머릿속에 그려지는 새로운 시도를 실현해내고 싶었다. 외식업은 변화하고 있었고, 그 변화에서 뒤처지면 승산이 없을 것이란 생각이었다. 결심을 내린 후 33살의 나이로 독립하게 됐다. 어머니의 가게에서 당신에게 부담을 덜어드리고, 기울었던 가세를 다시 일으키는 데 도움을 주고자 최소한의 생활비 정도만 받으며 일을 해왔기에 수중에 모인 돈이 없었다. 하지만 독립은 반드시 해야 하는 숙제였기에 어머니에게 나의 비전을 피력해 퇴직금 형태로 오천만 원이라는 목돈을 지원받았고, 축의금도 창업 자금으로 끌어왔다. 장모님도 든든한 지원군이 돼주셨다. 나를 믿어주는 친구들도 물심양면 도움을 주었고, 마침내 첫 매장인 ‘두툼’이 오픈하게 됐다”

 

오픈 첫날의 감정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어렸을 적의 꿈을 이루게 된 날이라 정말 가슴 벅차고 행복할 줄 알았지만, 첫날부터 웨이팅이 걸리며 정신없이 바빴던 기억밖에 없다. 사실 당시의 나는 외식업에서는 거의 초짜다 보니 첫 매장 오픈 전 이렇다 할 홍보도 하지 못했다. 아니, 홍보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정말 감사하게도 열과 성을 다해 준비한 제 음식을 손님들께서 좋게 평가해주셨고, 그분들에게 보답하고자 외식업 커뮤니티나 창업 선배님들을 따라다니며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법을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 몽탄(夢灘)
 

창업 후 어려운 과정도 있었을 텐데.
  “두툼의 시장 안착 후 솔직히 이렇다 할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두 번째 매장인 몽탄을 준비하며 심리적 어려움이 많아졌다. 처음 두툼의 오픈을 준비하던 당시만 하더라도 고깃집에 대한 특별한 콘셉트가 중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두툼 오픈 후 몇 년의 시간이 흐르며 외식시장, 그중 고깃집 시장은 정말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SNS가 발달하며 전국의 특색 있는 가게들이 줄지어 등장했고, 이를 벤치마킹하며 독특한 콘셉트의 고깃집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지켜보며 ‘과연 새로운 무언가가 아직 남아있기는 할까’, ‘새롭다고 생각했는데, 어디선가 이미 하고 있는 아이템이 아닐까’라는 걱정과 압박이 심했었다. 때문에 주변에서는 두툼의 직영점을 제안하기도 했지만, 나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당장 눈에 보이는 돈은 조금 더 벌 수도 있지만, 새로운 경험과 맛을 선사하고자 하는 나의 창업 모토가 충족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더 깊게 고민했다. 그렇게 4년의 시간이 걸려 몽탄이 탄생하게 됐다”

 

두툼과 몽탄, 그리고 초원에 상당히 많은 동료가 있다. 이들과는 어떠한 소통을 하는가?
  “매장이 사랑을 받는 만큼 매장 안에서 나와 함께하는 뜻있는 동료들도 많아졌다. 마음에서는 이들과 보다 가깝게 가족처럼 함께하고 싶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달콤한 사탕발림으로 환심을 사진 않는다. 리더로서 지킬 수 있는 말들만 입 밖에 내놓고, 그들 스스로가 자신의 꿈과 비전을 실현해나갈 수 있도록 뒤에서 받쳐준다. 그들이 창업을 꿈꾼다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도록 시스템을 체득시키고, 나와 오래하기를 원하는 이들에게는 무한한 책임과 신뢰를 준다. 이 모든 것은 그들이 ‘경험’을 통해 습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경험을 선물한다. 그리고 창업을 적극 권유한다. 다만, 한 가지 슬픈 사실은 창업에 뜻이 있다면 창업 전에 사업계획서라도 들고 오라고 당부하지만, 아직 사업계획서를 들고 나에게 찾아온 이가 없다는 것이다”

몽탄(夢灘)은 두툼과 몽탄, 초원 브랜드의 여세를 몰아 법인화를 추진하며 대한민국 외식산업의 경쟁력을 세계에 알리는 데 일익을 담당하고자 본격적인 움직임을 시작했다. 사진은 조준모 몽탄 대표(좌)와 김직 MHN F&B Inc. 대표(우). ⓒ 몽탄(夢灘)
 

앞으로의 계획과 끝으로 강조하고자 하는 사항이 있다면?
  “앞서 언급했던 법인화 이후 온라인을 통한 글로벌 시장 진출이 가장 큰 목표다. 열 마디의 말보다 한 번의 행동이 중요하듯, 앞으로 몽탄의 법인화와 코리아미트클럽(KMC)의 신규사업과 브랜드, HMR과 RMR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낼 몽탄의 행보를 기대해주길 바란다”

 

이슈메이커 김남근 기자 issue8843@issuemak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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