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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영원한 국가대표 2루수 정근우

단독 인터뷰

by issuemaker 2021. 2. 15.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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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이닝에 접어든 야구 인생 2막

사진=김갑찬 기자 장소제공=와니엘 배팅센터 인천점


웃음이 넘쳤던 은퇴 기자회견, 역시 정근우였다
‘1년 중 가장 슬픈 날은 야구가 끝나는 날’이라는 말에 공감하는 야구팬 역시 많을 것이다. 이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토미 라소다 前 LA 다저스 감독의 명언이기도 하다. 야구팬과 토미 라소다 감독에게 야구가 끝나는 날이 가장 슬프다면 그라운드 위의 선수들에게 가장 슬픈 날은 언제일까? 아마도 정든 유니폼과 벗고 팬들의 응원이 가득했던 그라운드를 떠나야 하는 은퇴 순간이 아닐까 한다. 그동안 최고의 플레이를 선보였던 선수들도 현역 시절 거침없는 카리스마는 뒤로한 채 은퇴식 혹은 은퇴 기자회견에서 어린아이처럼 서럽게 눈물 흘리는 모습을 자주 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야구계에는 유독 우수한 선수들이 대거 등장하는 황금 세대가 존재한다. 한국인 첫 메이저리거인 박찬호를 비롯해 故 조성민, 임선동, 박재홍, 정민철, 염종석 등을 배출한 92학번 황금 세대가 그 시작이라 할 수 있다. 현역 메이저리거인 김광현을 필두로 양현종, 김현수, 손아섭 등은 모두 88년 올림픽 둥이로 현재 대한민국 야구계를 이끄는 핵심주축이다. 전설의 82년생 황금 세대도 빼놓을 수 없다. 메이저리거 추신수는 물론 이대호, 김태균, 정근우, 오승환 등 이들의 이름만으로도 야구팬을 설레게 하는 말 그대로 역대급 레전드다. 이들은 미국과 한국, 일본 등 프로리그는 물론 WBC와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 국제대회에서도 맹활약하며 야구를 국민스포츠의 반열에 올려놓은 1등 공신이다.
 
영원할 것 같았던 이들의 커리어 역시 세월 앞에는 장사 없었다. 82년생 황금 세대의 대부분은 그라운드를 떠났거나 커리어의 막바지를 향해간다. 영원한 국가대표 2루수 정근우 역시 지난 2020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SK 와이번스에서 데뷔한 그는 팀의 왕조를 이끌었던 주축 멤버이자 국가대표 부동의 2루수로서 국제무대에서도 그의 전매특허인 악착같은 플레이로 국위 선양에 앞장섰다. 한화 이글스로 이적하며 거액의 FA 계약도 맺었던 그는 결국 지난해 LG트윈스에서의 1년을 끝으로 올 타임 레전드의 퍼포먼스를 마무리했다. 은퇴 후 처음 맞이한 조용한 겨울,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정근우의 제2의 야구 인생이 궁금해 2021년 2월 이슈메이커가 그를 만났다.
 

사진=김갑찬 기자 장소제공=와니엘 배팅센터 인천점


은퇴 후 첫 겨울, 낯설지 않나
“사실 이 시기(인터뷰 당시 12월 말)는 현역 시절에도 비활동 기간이다. 시즌 중 만나지 못했던 지인도 만나고 하지 못했던 일들도 처리하는 시간이었다. 따라서 아직은 은퇴했다는 사실이 크게 와닿지 않는다.”
 
그렇다면 최근 일상이 궁금하다
“선수 시절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기에 최대한 가족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자 한다. 애들 픽업도 밥도 청소도 하면서 아빠 정근우로 돌아왔다.”
 
집안일과 야구, 무엇이 더 어렵나
“솔직히 집안일이 더 어려운 것 같다. 집안일 말고도 아이가 셋 있는데 첫째는 야구 둘째는 공부 셋째는 피겨에 집중하기에 종일 아이들 픽업과 매니저 역할만으로도 힘에 부친다. 그래도 선수 시절 거의 하지 못했으니 지금은 집안일을 최대한 도우려고 노력한다.”
 

사진=김갑찬 기자 장소제공=와니엘 배팅센터 인천점


유니폼을 벗어야겠다는 결심은 언제 하게 됐나
“은퇴 결심은 시즌 중반쯤이었다. 지난해 LG트윈스로 팀을 옮기며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자 했다. 당시만 해도 후배들과의 경쟁에서도 자신 있었다. 다만 햄스트링 부상을 시작으로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한 달 넘게 재활군에 머무르던 당시 팀은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제 팀에 야구로서 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다만 팀의 레전드인 용택이 형(박용택 선수)의 은퇴가 이미 결정된 상황이었기에 LG에 이제 갓 합류한 제가 중간에 은퇴 선언해버려 관심이 나뉜다면 팀에도 용택이 형에게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따라서 시즌을 마치고 은퇴 선언을 하게 됐다.”
 
보통은 은퇴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나
“돌이켜보면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유쾌한 은퇴식이라 주위에서도 ‘정근우답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사실 은퇴식 아침까지도 만감이 교차했다. 눈물이 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양쪽 주머니에 모두 손수건을 넣었다. 태균이가(김태균 선수) 본인 은퇴 기자회견에서 엄청 울었기에 그 부분이 조금 의식됐다. 그런데 기자회견장에 도착해서 기자분들을 보니 반갑고 감사한 마음에 웃음이 나더라. 기자분들께서 제가 16년 동안 프로야구 선수로 활약하며 크게 사고 친 적도 없었기에 좋은 그림을 만들어 주셔서 팬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선수 생활을 후회 없이 마쳤기에 후련하게 미련 없이 은퇴 기자회견을 마칠 수 있었다. 다만 와이프와 은퇴 관련 이야기와 상의를 하면서는 20년 이상 함께 했던 야구를 그만두는 것이었기에 눈물이 조금 나긴 했다.”
 
최근 스포츠 스타들이 은퇴 후 방송 쪽 진출이 잦다
“생각보다 섭외요청이 없네요(웃음). 방송도 그렇고 지도자도 그렇고 우선 어느 하나를 정해놓기보다 이런 여유가 다시 올 수 없을 것 같으니 열린 마음으로 여러 가지를 해보고 싶다. 우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최우선이고 제2의 인생은 천천히 고민해보고자 한다.”

 

사진=김갑찬 기자 장소제공=와니엘 배팅센터 인천점


“야구는 제 전부입니다”
부산에서 태어난 정근우는 어려서부터 추신수, 이대호 등과 함께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성장해왔다. 이들과 끊임없이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지난 시즌을 마치고 은퇴를 선언한 김태균, 한국과 일본에 이어 미국 무대까지 경험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끝판왕 오승환까지 82년생 황금 세대 주축 중 정근우만 유일하게 해외 무대를 경험하지 못했다. KBO에서 역대급 커리어를 쌓아왔지만 해외 무대에서 활약하는 친구들의 모습이 부럽진 않았을까? 황금 세대의 주축, KBO 역대 최고의 2루수 정근우가 미처 하지 못했던 야구 이야기를 이슈메이커가 함께해 보았다.
 
FA 계약 당시 해외 진출을 하지 않은 이유가 있을까
“당시 주위에서도 아쉽지 않냐고 이야기가 많았다. 당시에도 지금도 전혀 아쉽지 않다. 왜냐하면 해외 진출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같은 82년생 친구들이 유독 일본과 미국에서 성공적 커리어를 만들었기에 비교되는 부분은 있었다. 그러나 세 아이의 아빠이자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안정적 환경에서 야구를 하고 싶었다. 다시 돌아가더라도 같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고고 졸업 후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다. 어떤 기분이었나
“당시 신인 드래프트 이후 청소년대표팀에 소집됐다. 대부분의 친구가 프로 지명을 받았기에 속으로 아주 부러웠다. 저는 대학 진학도 결정되지 않았기에 마음이 더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소위 에드먼턴 키즈라 불리던 쟁쟁한 친구들 사이에서 주장을 맡고 대표팀도 좋은 성적을 거둬 좋은 기억으로 고교 무대를 마칠 수 있었다.”
 
본인이 프로팀 스카우트라면 당시 정근우를 선발했을까
“제가 스카우터라도 반신반의했을 것 같다(웃음). 신인 선발의 경우도 매해 분위기가 다르다. 특히 당시에는 키가 크고 힘 좋은 선수를 선호하던 시기였다. 그렇기에 키가 작았던 저의 성장 가능성을 낮게 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대학 진학 후 절치부심 끝에 프로 지명을 받았다
“처음 지명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눈물이 나더라. 당시 연습 게임 중이었는데 시합을 뛰지 못할 정도로 많이 울었다. 사실 드래프트를 앞두고 담담한 척했지만 한 번의 아픔이 있었기에 불안한 마음도 컸다.”

사진=김갑찬 기자 장소제공=와니엘 배팅센터 인천점


정근우의 인생 경기를 꼽자면
“첫 번째는 2007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기록한 역전 투런 홈런이다. 두 번째는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세 번째는 2015 WBSC 프리미어 12에서 주장으로서 팀을 이끌고 대한민국을 초대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던 순간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당시만 해도 이 대회가 국가대표 마지막 경기가 될 줄은 몰랐다(웃음).”
 
제2의 이종범 이정후 부자를 기대해도 좋을까
“첫째 아들이 야구를 한다. 취미가 아닌 진지하게 선수를 준비 중이다. 다만 아들에게 항상 이야기하는 부분은 야구 선수로 성공하는 것이 물론 베스트지만 야구와 함께 인간관계나 사회생활 등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인생을 배우라고 강조한다. 야구로 꼭 성공하지 않아도 되니 일단은 후회 없이 즐기며 야구를 했으면 한다.”
 
정근우에게 야구란
“수없이 들었던 질문이지만 제 대답은 언제는 ‘야구는 제 전부입니다’였다. 진부하게 들릴 수 있지만 진심이다. 야구가 있었기에 정근우가 있었고 일어나서 자기 전까지 항상 야구 생각만 했다. 야구를 하며 아내를 만나고 아이들을 키우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줬다. 열심히 노력한 대가로 FA 계약으로 가족에게 더 많은 것을 해줄 수 있는 아빠가 됐고 이는 야구가 이었기에 가능했다.”
 
언제나 한결같이 야구가 전부였고 진심이었던 영원한 국가대표 2루수 정근우. 그렇다면 본인의 야구 인생을 점수로 매기자면 몇 점을 줄 수 있을까? 그는 주저 없이 100점이라고 답했다. 20년 이상 야구를 하며 수많은 희로애락을 함께했지만 힘든 순간도 잘 이겨내고 영광의 순간에도 자만하지 않았으며 ‘프로’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도록 매 순간 최선을 다했기에 가능한 대답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은퇴 순간에서도 눈물보다 가장 정근우다운 모습으로 마무리했던 악바리 정근우. 새로운 이닝에 접어들 그의 인생 2막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이슈메이커 김갑찬 기자 kapchan17@issuemak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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