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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장인정신으로 빚어내는 특별한 가치

매거진

by issuemaker 2024. 6. 25.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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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정신으로 빚어내는 특별한 가치
 

끊임없는 혁신으로 독보적 명성 이어와
불황마저 이기며 지난해 20% 이상 매출 성장

에르메스는 1837년 창립부터 고수해온 유서 깊은 장인정신을 6세대에 걸쳐 계승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헤리티지 브랜드다. 그저 높은 가격만 앞세우는 게 아닌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품질의 완성도와 철저한 고객관리로 가치를 인정받으며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명품 중의 명품’으로 자리 잡았다.

ⓒ에르메스


마구 용품 판매로 시작해 쌓은 200년 역사
에르메스는 1837년 창립자 티에리 에르메스가 프랑스 파리에서 가죽으로 말의 안장과 마구 용품을 만들어 판매하던 ‘마구장’으로 시작했다. 지금 에르메스 브랜드 이미지에 ‘마차’가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수준 높은 가죽 가공 실력으로 정평이 나서 1867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에르메스의 마구 용품은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 전 세계 왕실과 귀족에게 공급되었다. 그러면서 아들 샤를-에밀 에르메스는 공방을 포부르 생토노레 24번가로 이전하고 그곳에 매장을 열었다. 에르메스의 상징과도 같은 이곳에서 그는 마구와 안장을 주문 제작했다.

  1900년대 초반부터는 3세 경영이 시작됐다. 손자인 에밀 에르메스가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당시 에밀 에르메스는 미국에서 자동차 산업이 발전하는 것을 보고 여행산업이 성장할 것으로 예상해 가방과 벨트, 장갑, 옷 등 부티크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와 함께 1922년 캐나다 여행 중 군용 차량 후드의 미국식 개폐장치에 매료되어 이에 대한 독점권을 얻어 에르메스 가방에 도입하게 됐다. 이것이 최초의 지퍼백 ‘볼리드 백’이다.

에르메스는 1837년 프랑스 파리에서 가죽으로 말의 안장과 마구 용품을 만들어 판매하던 ‘마구장’으로 시작했다. ⓒGUY LUCAS DE PESLOUAN/에르메스


  1951년에는 에르메스의 상징과도 같은 ‘오렌지 박스’가 세상에 등장했다. 2차 세계 대전 후 황폐해진 유럽은 물품과 자원이 턱없이 부족했고, 이러한 상황은 종이상자를 만드는 제조업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당시 인기가 없던 오렌지색 종이만 남아 있었는데, 당시 에르메스를 이끌던 로베르 뒤마는 과감하게 오렌지색 종이를 도입했고 이것이 오늘날 에르메스의 상징색으로 자리 잡게 됐다.

  1956년에는 ‘켈리백’이 탄생했다. 처음 승마용 안장과 액세서리 보관 용도로 디자인되었으나 모나코 공주이자 여배우인 그레이스 켈리가 임신 중 파파라치로부터 배를 보호하기 위해 이 가방으로 볼록한 배를 가린 사진이 ‘라이프’ 매거진 커버를 장식하면서 많은 여성에게 인기를 얻게 되며 켈리백이란 이름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1951년 에르메스의 상징과도 같은 ‘오렌지 박스’가 세상에 등장했다. ⓒMartin Abegglen/Flickr


돈이 있어도 아무나 살 수 없는 가방
에르메스는 ‘돈이 있어도 아무나 살 수 없는 가방’으로 유명하다. 프랑스 현지에서 한땀 한땀 수작업으로 제작되고, 연간 제조 물량이 한정적인 만큼 1~2년 대기는 기본이다. 가방 모델은 1,000만 원대부터 시작하며 2억 원을 호가하는 제품도 있다. 유명 가방 ‘버킨백’은 모델이자 영화배우, 가수인 제인 버킨의 이름을 땄다. 1984년 버킨은 에르메스 켈리백을 들고 비행기를 탔다가 가방에 물건이 많아 바닥에 쏟아진 일이 있었다. 당시 경영자였던 장 루이 뒤마는 이후 버킨을 위해 수납이 잘 되는 실용적인 가방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버킨백’이다. 이를 비롯한 ‘켈리백’, ‘콘스탄스백’ 등은 VIP 고객들만 주문 제작할 수 있다. 또한 구매하기 위해서는 매장에서 식기, 의류, 신발 등을 구매해 4,000만 원에서 1억 원가량의 실적을 채워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명품 소비의 둔화와 경기침체로 얼어붙은 시장 상황 속에서도 에르메스는 지난해 20% 이상 매출 성장을 기록했다. 매출 134억 유로와 순이익 43억 유로를 기록했고, 작년 4분기에도 매출 33억 6,000만 유로를 기록했다. 이는 2022년 같은 기간 대비 18% 증가한 수치다. 로이터통신은 클래식한 디자인과 함께 세심한 생산·재고 관리에 힘입어 고가 브랜드 중에서 가장 꾸준한 성과를 유지하고 있다고 성장 비결을 분석했다. JP모건은 “에르메스는 다른 리그에서 뛰고 있다”고 평가하며 에르메스가 ‘명품 중의 명품’이라는 이미지를 굳건히 하는 데 힘을 보탰다.

  국내 인기도 뜨겁다. 지난 4월 에르메스코리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에르메스의 지난해 국내 매출은 전년보다 22.7% 증가한 7,972억 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12%, 20.1% 증가한 2,357억 원, 1,848억 원으로 집계됐다. 주요 백화점 3사에서 해외 유명 브랜드 매출이 전년보다 0.5% 증가에 그친 점을 고려하면 돋보이는 성장세다.

에르메스 가방은 프랑스 현지에서 한땀 한땀 수작업으로 제작되고, 연간 제조 물량이 한정적인 만큼 1~2년 대기는 기본이다. ⓒBENOIT TEILLET/에르메스


덩치 키우는 경쟁자와는 다른 길 걸어
에르메스의 성공 배경인 가족 경영은 6대손으로 이어져 현재는 악셀 뒤마가 기업을 맡고 있다. 1970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사촌들과 삼촌의 집에 자주 모여 가죽 장인들의 일인 바느질과 염색 등 ‘가족의 전통’을 배웠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와의 인터뷰에서 뒤마는 “카드 지갑은 만들 줄 안다”며 “바느질보다는 가죽을 벗기고 염색하는 데 소질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에르메스가 그의 목표는 아니었다. 파리정치대학에서 법학과 철학을 전공한 뒤마는 졸업 후 프랑스 투자은행 BNP파리바에서 8년간 일하며 미국 뉴욕과 중국 베이징에서 거주했다. 그러던 2003년 에르메스 생산 부문을 담당했던 그의 어머니가 숨을 거두게 되었고, 삼촌이자 5대손으로 회사를 이끈 장 루이 뒤마가 찾아와 에르메스에 합류해달라고 부탁했다. 거절할 수 없었던 뒤마는 재무 부문에서 시작해 주얼리 사업을 키워냈고 이후 본사인 프랑스 사업 책임자 자리에 올랐다.

  그 뒤 에르메스는 가문 사람 200여 명에게 분산되어 있던 지분을 모아 지주회사를 만들고 오너 경영으로의 회귀를 선포했고, 구심점인 악셀 뒤마가 2013년 CEO로 취임했다. 최고경영자가 된 뒤 뒤마는 장인정신 고수와 품질을 최우선으로 여겼다. 당시 주요 브랜드들이 수요를 맞추고 생산 단가를 낮추고자 대량 생산을 전개하며 매출을 뛰어나도 품질이 떨어졌다면 에르메스는 다른 길을 간 것이다.

명품 소비의 둔화와 경기침체로 얼어붙은 시장 상황 속에서도 에르메스는 지난해 20% 이상 매출 성장을 기록했다. ⓒKEIJA CHEN/에르메스


  에르메스의 가죽 제품은 지금도 프랑스에서만 생산된다. 글로벌 직원 약 17,600명 중 장인만 5,000명이 넘는다. 연간 가죽 제품 생산량 증가율은 6~7%로 맞춘다. 2021년에는 장인들을 육성하기 위한 ‘에르메스 스쿨(에콜 에르메스 데 사부아페르)’도 설립했다.

  뒤마의 경영 전략은 해외 진출과 사업 다각화, 디지털 강화이다. 2014년 중국 상하이에 세계 다섯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 ‘메종 에르메스 상하이’를 열었고, 폴란드 시장에도 처음 진출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 현재 세계 45개국에 300개가 넘는 매장을 보유하게 됐다. 주로 가죽 제품에 치우쳐 있던 사업 부문도 다각화해 2020년 에르메스 뷰티를 출시하며 향수와 함께 화장품 사업을 강화했다. 그 결과 2010년 전체 매출의 50%이던 가죽 제품 비중은 절반 이하로 낮아졌다. 그 자리를 잡화와 리빙, 주얼리 부문이 채웠다.

  디지털 강화에도 힘쓰는 중이다. 2001년 명품업계 최초로 온라인 쇼핑몰을 열었던 에르메스는 모바일로 바뀌는 트렌드에 발맞춰 2017년을 ‘디지털 변화의 해’로 부르며 미국과 유럽에 있던 온라인몰을 재정비하고 세계 29개 국가로 확장했다. 당대 최고에 만족하지 않고 미래를 내다보며 끊임없는 혁신을 시도한 것이 에르메스가 독보적 명품 브랜드로서 세대를 넘어 지금까지 명성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인 셈이다.

이슈메이커 손보승 기자 rounders23@issuemak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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