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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 시대, 취미도 ‘가성비’를 따진다

issuemaker 2026. 2. 3.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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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 시대, 취미도 ‘가성비’를 따진다

당근서 유행하는 ‘경도’, 준비물 없는 취미의 확산
새로운 취미 기준으로 떠오른 지속성·느슨함

고물가가 일상이 된 요즘, 취미를 대하는 태도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한때 악기 하나를 배우려면 수십만 원의 레슨비가 필요했고 운동을 시작하려면 장비부터 회원권까지 초기 비용이 만만치 않았지만, 최근에는 부담 없이 오래 즐길 수 있는 ‘가성비 취미’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픽사베이


오늘 저녁에 ‘경도’ 하실 분
최근 중고거래 앱 ‘당근’에서는 모르는 사람들끼리 모여 ‘경도’를 하는 것이 유행이다. 당근에서 ‘경찰과 도둑’을 검색하면 여러 개의 방이 나오는데, 2000명이 한 방에 모인 경우도 있다. 전국 당근 커뮤니티 게시판에도 모집 글이 올라온다. 모임은 주최자가 일정을 생성해 시간과 장소를 공지하면 참가자들이 신청해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지난해 12월 30일 가수 이영지는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경찰과 도둑 참가자를 모집하는 글을 올렸고 구글폼을 통해 참가자들을 모집했다. 나영석 PD와 함께 콘텐츠화할 예정임도 밝혔다. 100명을 모집하는 구글폼엔 하루도 지나지 않아 7만 명이 신청했고 1월 7일에는 9일까지 받을 예정이었던 폼을 조기 마감한다고 밝혔다. 이영지는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경찰과 도둑 10만 명이 지원해서 폼 미리 닫습니다. 곧 추첨할게요”라고 밝혔다. 경도의 높은 인기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 게임의 방식은 단순하다. 경찰은 도둑을 제한 시간 내에 다 잡으면 이기고 도둑은 제한 시간 동안 도망 다니면 된다. 도둑을 모두 잡아야 경찰이 이긴다. 잡힌 도둑은 감옥으로 가고, 잡히지 않은 도둑이 감옥에 있는 도둑을 터치하면 탈출할 수 있다.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경도는 요즘 확산 중인 ‘가성비 취미’ 선호 현상의 일종이다. 준비물이 필요 없고 단순한 규칙에 소요 시간도 적다. 참가자들은 30분에서 1시간 남짓 몸을 움직이고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지속성이 전제되지 않는 점도 경도의 ‘매력’이다. 실력을 쌓아야 할 필요도 없다.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그 시간만 즐기면 된다. 이런 느슨함은 요즘 취미가 갖는 새로운 기준을 보여준다. 취미가 반드시 전문성이나 성취로 이어질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가수 이영지는 지난해 12월 30일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경찰과 도둑’ 참가자를 모집하는 글을 올렸다. ⓒ이영지 인스타그램 스토리


“취미에도 가성비가 중요”
취미는 즐거움을 위한 활동이지만 현실적인 조건과 무관할 수는 없다. 생활비 부담이 커지면서 취미 역시 지출을 고려한 선택의 영역이 됐다. 큰 초기 비용이 드는 취미보다 필요할 때 언제든 멈출 수 있는 활동이 선호되는 이유다. 러닝이나 산책, 무료 운동 모임과 함께 경도가 주목받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다만 가성비 취미를 단순히 ‘돈이 적게 드는 활동’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핵심은 ‘지속 가능성’이다. 무리 없이 일상에 녹아들 수 있는지, 부담 없이 반복할 수 있는지가 기준이 된다. 전문가들은 이를 취미에 대한 인식 변화로 해석한다. 취미가 과시나 소비의 대상에서 벗어나 일상의 균형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과보다 과정, 성취보다 시간을 보내는 방식 자체의 가치가 커지고 있음을 뜻한다.

ⓒ픽사베이


  가성비 취미의 확산이 취미 문화의 위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취미를 소비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고가 장비나 정기 수강 대신, 소액의 도구나 콘텐츠에 필요할 때마다 지출하는 형태다. 출판·문구·운동용품·디지털 콘텐츠 등 일부 분야에서는 오히려 안정적인 수요가 이어지고 있다. 가성비 취미는 눈에 띄는 유행이라기보다 생활 속에서 서서히 자리 잡는 변화에 가깝다. 삶이 빠듯해진 만큼, 취미만큼은 부담 없이 이어가고 싶다는 심리가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중고 거래 플랫폼 데이터를 보면 2025년 상반기 취미·굿즈 관련 거래액은 전년 동기 대비 226% 증가했다. 특히 피규어와 레고 같은 수집형 취미 상품의 성장세는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 희소성이나 재판매 가치까지 고려하는 소비가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젊은 세대 일부는 니트나 구슬 공예 등 아날로그 기반 취미를 통해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몰입 경험을 쌓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휴대폰 스크린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온을 찾는 취미’로 SNS에서도 공감을 얻고 있다.

  결국 가성비 취미는 비용 절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소비자는 이제 취미를 싸고 비싼 기준으로 나누기보다, 비용 대비 정서적·사회적·경험적 가치를 얼마나 얻을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선택지를 재정비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소비 트렌드를 넘어 삶의 질을 다시 정의하는 변화로 볼 수 있다. 각자가 가진 시간과 여유, 한정된 비용 속에서 즐거움을 어떻게 극대화할 것인지 고민하는 흐름이 요즘 취미 문화의 본질로 자리 잡고 있다.

이슈메이커 이소라 기자 raya25@issuemak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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