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인터뷰

[the CEO] 여일석 (주)글로픽스 대표

issuemaker 2026. 2. 2.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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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의 마침표는 모니터가 아닌 고객의 손끝에 있다”

20년 디자인 현장에서 찾은 제조의 가치
결과의 일관성과 완성도 끝까지 책임지며 해외 시장 개척

디자인은 언제 완성되는가. 누군가는 화려한 시안이 모니터 위에 띄워졌을 때를, 누군가는 클라이언트의 승인이 떨어졌을 때를 말한다. 하지만 (주)글로픽스 여일석 대표의 대답은 다르다. 그는 “디자인은 화면 속 그림이 아니라, 고객의 손에 쥐어진 실물 그 자체”라고 정의한다. 오랜 시간 디자이너로 살아온 여 대표가 펜 대신 기계를 잡고, 책상 대신 공장을 택한 이유도 이 확고한 믿음 때문이었다. 디자인의 의도가 왜곡되지 않고 온전히 구현되는 것, 그 단순하지만 어려운 목표를 향해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걸었던 그는 자신의 철학이 틀리지 않았음을 성과로 증명해 보이고 있다.

 

사진=손보승 기자


디자인의 끝은 어디인가, 현장에서 찾은 질문
“학창 시절부터 디자인을 전공했고, 사회에 나와서도 20년 가까이 디자이너로 일했습니다. 중소 디자인 회사에서 실무를 익혔고, 대기업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거대한 조직의 논리도 경험했죠. 하지만 현장에서 마주한 문제는 늘 같았습니다. 모니터 속 디자인은 완벽했지만, 정작 인쇄되어 나온 결과물은 의도와 달랐다는 점입니다.”

  여일석 대표는 디자이너로서 느꼈던 오랜 갈증을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디자인과 제작이 분리된 기존 산업 구조에서 디자이너의 의도는 공정을 거치며 희석되기 일쑤였다. 색감은 탁해지고, 재질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누구의 잘못이라 꼬집기도 모호한 상황에서, 결과에 대한 책임은 흐려졌고 실망은 오롯이 고객과 디자이너의 몫으로 남았다.

  그는 이 구조적인 모순을 해결하고 싶었다. ‘디자인을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디자인된 결과가 그대로 구현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라 판단했다. 글로픽스의 시작은 바로 이 지점이었다. 디자인 기획부터 제작, 검수, 출고, 배송에 이르는 전 과정을 하나의 흐름으로 통합하여 책임지는 회사. 여 대표는 단순히 인쇄물을 납품하는 것을 넘어, 결과물의 완결성을 보증하는 ‘제조 운영 기업’을 꿈꿨다.

  창업 초기, 주위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인쇄업은 사양 산업 아니냐”, “디자이너가 무슨 공장이냐”는 우려가 쏟아졌다. 하지만 그는 확신했다. 디지털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사람들이 손으로 만지고 느끼는 물성(物性)의 가치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오히려 누구나 쉽게 디자인 툴을 다루는 시대가 올수록, 그 디지털 데이터를 고품질의 실물로 구현해 줄 전문가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 내다봤다.

(주)글로픽스는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커스텀 인쇄 제조를 온라인 기반으로 운영하는 제조 중심 커머스 기업이다. 사진=손보승 기자


글로벌 시장에서 찾은 해답, 수출의 탑 성과로 이어지다
여일석 대표의 예상은 적중했다. 특히 그의 시선이 머문 곳은 국내가 아닌 해외였다. 국내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였고, 과도한 가격 경쟁으로 품질보다는 단가가 우선시되는 경향이 짙었다. 반면 해외 시장, 특히 커스텀 인쇄 수요가 높은 선진국 시장은 달랐다. 그들은 품질의 일관성, 정확한 납기, 그리고 빠르고 섬세한 커뮤니케이션을 원했다. 여 대표가 추구해 온 ‘결과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무대였다.

  “처음부터 해외 시장을 타깃으로 삼았습니다. 외부 투자 없이 자체 성장만으로 글로벌 시장의 문을 두드렸죠. 해외 고객들은 냉정합니다. 품질이나 납기, CS(고객 서비스) 중 하나라도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가차 없이 등을 돌립니다. 하지만 반대로, 그 기준을 충족시키면 무한한 신뢰를 보내줍니다. 우리가 만든 결과물이 고객의 예상과 정확히 일치했을 때, 그들이 보내오는 만족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산이 되었습니다.”

  글로픽스는 철저한 현지화 전략과 본사의 통합 관리 시스템을 결합해 경쟁력을 키웠다. 각 국가의 문화와 소비 패턴에 맞춘 현지 법인을 운영하되, 핵심적인 제조 품질과 운영 프로세스는 본사가 엄격하게 통제했다. 한국 특유의 섬세한 디자인 감각과 꼼꼼한 품질 관리는 해외 고객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단순히 “인쇄해 주세요”라고 던지는 해외 고객에게, 더 나은 색상과 레이아웃을 역으로 제안하며 퀄리티를 높여주는 글로픽스의 방식은 입소문을 탔다. 그 결과 수출의 탑을 두 차례 수상하며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는 단순히 매출의 규모를 넘어, 한국의 제조 서비스가 글로벌 스탠다드로 인정받았음을 의미하는 쾌거였다.

여일석 대표는 자신은 방향만 잡을 뿐 회사의 성장은 오롯이 직원들의 몫이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사진=손보승 기자


“회사의 성장은 오롯이 직원들의 몫”
여일석 대표는 사내에서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하다”고 거침없이 말하는 리더다. 언뜻 냉정하게 들릴 수 있는 이 말속에는 그만의 확고한 경영 철학이 담겨 있다.

  “결과가 담보되지 않는 과정은 개선의 지표가 될 수 없습니다. 열심히 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고객은 우리의 노력이 아닌, 손에 쥐어진 결과물로 우리를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대신 저는 결과가 운에 좌우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데 집착합니다. 누구나 매뉴얼대로 하면 일관된 고품질의 결과물을 낼 수 있는 구조, 그것이 제가 지향하는 조직입니다.”

  그는 구성원들에게도 주체성과 책임감을 강조한다. 수동적으로 지시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먼저 정의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며 결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인재. 여 대표는 그런 프로페셔널들과 함께 일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창업 초기부터 성과에 대한 확실한 보상 시스템을 도입했다. 회사가 성장하는 만큼 구성원도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냉철함 뒤에는 사람에 대한 깊은 신뢰가 깔려 있다. 여 대표는 인터뷰 내내 “회사의 성장은 오롯이 직원들의 몫”이라며 공을 돌렸다. “저는 방향만 잡을 뿐, 실제 현장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땀 흘리는 것은 우리 구성원들입니다. 까다로운 해외 고객들을 친절하게 응대하고, 엄격한 품질 기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직원들의 모습에서 저는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고객의 리뷰에서 우리 직원에 대한 칭찬을 발견할 때가 CEO로서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향한 끝없는 도전
현재 글로픽스는 또 한 번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바로 제조 시설의 고도화와 인공지능(AI) 기술의 접목이다. 여일석 대표는 AI를 인력 대체 수단이 아닌, 인간의 창의성을 돕는 도구로 바라본다.

  “반복적이고 단순한 업무는 인공지능과 자동화 시스템에 맡기고, 구성원들은 더 중요한 품질 판단과 기획 업무에 집중하게 하려 합니다. AI를 통해 디자인 시안을 더 빠르고 다양하게 제안하고, 생산 공정의 오류를 최소화하는 것이죠. 결국 기술은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그는 또한 해외에서 쌓은 성공 방정식을 국내 시장에도 적용해 볼 계획이다. 그동안 인쇄 시장의 경직된 구조 때문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국내 소비자들에게, 쉽고 편리하면서도 퀄리티가 보장되는 커스텀 서비스를 선보이겠다는 포부다. “디자인에서 제조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는 ‘커스텀 인쇄·제조’ 영역의 글로벌 리더가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특정 아이템에 국한되지 않고, 고객이 상상하는 모든 것을 현실로 구현해 주는 가장 안정적인 파트너가 되고 싶습니다.”

  ‘대표’라는 직함보다 ‘문제를 해결하는 디자이너’라는 정체성이 더 편하다는 그. 디자인의 본질을 좇아 국경을 넘고, 제조의 혁신을 이뤄낸 그의 여정은 이제 막 새로운 챕터에 들어섰다. 디지털 시대, 아날로그의 감성을 가장 세련된 방식으로 전하는 여일석 대표의 손끝에서 또 어떤 결과들이 만들어질지 기대된다.

이슈메이커 손보승 기자 rounders23@issuemak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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