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리더십의 전환점에 선 삼성전자
리더십의 전환점에 선 삼성전자
미래의 10년, 삼성전자가 택한 구조적 시사점
기술 기반 리더십의 부상, 전략적 판단을 읽다
세계 무대에서 디바이스 기업 간 경쟁이 하드웨어를 넘어 서비스·플랫폼·생태계로 확장되는 지금, 한 기업의 리더십도 새로운 기준을 요구받고 있다. 삼성전자가 지닌 글로벌 위상은 여전히 막강하지만, 변화의 흐름 속에서 기존의 ‘모바일 중심’ 전략만으로는 다음 장을 열기 어렵다. 이 가운데 기술 출신 리더로서는 드물게 조직의 정점에 선 노태문 대표이사의 이번 선임은 삼성전자 전체의 방향 전환을 의미한다. 제품 설계와 개발의 언어로 조직을 이해해 왔고, 그 경험을 기반으로 이제 조직·시장·문화라는 복합적 퍼즐을 풀어야 한다는 과제를 안았다. 기술을 아는 리더가 현실 속 기준을 어떻게 만들지, 앞으로 삼성전자의 다음 10년을 가늠하게 될 그의 선택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엔지니어의 영역에서 경영의 영역으로
지난달 21일, 올해 3월부터 8개월간 직무대행으로서 DX부문을 이끌어왔던 노태문 대표를 삼성전자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직무대행’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정식 DX부문장이 됐고, MX사업부장직은 그대로 유지한다. 이 같은 선임 배경에는 노 대표가 ‘관리자가 된 사람’이 아니라 ‘제품을 알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라는 평가가 주요했다. 1997년 엔지니어로서 삼성전자 연구원으로 입사한 그는 기초 설계부터 시장 출시까지 직접 경험하며 기술과 실무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이후 무선사업부에서 차세대 제품 개발을 책임지며 스마트폰 사업의 골격을 다졌고, 2020년 모바일경험(MX) 사업부장으로 승진하며 프리미엄 스마트폰의 방향성을 직접 주도했다. 조직 내부에서 그는 단지 보고서를 읽는 리더가 아니라, 회로와 설계의 세계를 이해하는 리더로 인식되었다.
그가 이룬 성과 중에서도 폴더블 스마트폰 전략은 리더십의 하이라이트였다. 접히는 스마트폰이라는 개념은 기술적으로뿐 아니라 시장 전략적으로도 리스크가 많았지만, 그는 이를 ‘사용자의 경험을 바꾸는 장치’로 바라봤다. 기존 제품의 사양 경쟁을 넘어, 형태와 사용 맥락까지 고민한 설계 철학이 그가 리드한 제품군에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그는 “기술은 가능성만 보여줘선 안 되고, 사용자가 경험하도록 설계돼야 한다”라는 신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같은 배경은 ‘노태문 표 리더십’의 원천이 된다. 조직에서 기술을 이해하는 리더가 존재하는 것은 단지 기술적 설계에 유리하다는 차원을 넘어선다. 제품의 구조적 한계를 파악하고, 기술이 시장에서 어떻게 차별화될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은 조직 내 의사결정의 무게를 바꿨다. 한 산업 분석가는 “엔지니어 출신 리더는 기술적 기반 위에 조직 혁신을 이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갖춘다”라며 “기업 내부에서는 그가 기술과 조직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가 형성됐다”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기술 기반 리더십이 곧바로 전체 조직을 움직이는 리더십으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다. 노 대표는 지금까지 모바일 사업부 중심의 리더였고, 이제는 가전, 영상, 서비스까지 아우르는 디바이스경험(DX) 조직의 수장이 된다. 즉, 기술자에서 경영자로의 전환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는 이제 기술을 아는 리더이면서 동시에 조직과 시장을 읽는 리더로 거듭나야 한다.

제품 전략의 변화, ‘사양’에서 ‘경험’으로
삼성전자의 제품 전략은 더 이상 숫자 중심 경쟁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해상도와 배터리, 성능 지표로 대표되던 과거의 기준은 한계에 도달했고, 그 자리를 ‘사용자의 경험’이라는 새로운 축이 대체하고 있다. 노태문 대표가 주도한 폴더블 스마트폰 전략은 이러한 변화의 상징적인 지점이다. 이는 스마트폰이라는 기기의 쓰임 자체를 다시 정의한 시도였기 때문이다.
폴더블 전략은 기술적으로도, 시장적으로도 보수적인 선택과 거리가 멀었다. 접히는 구조는 내구성, 사용자 적응, 생산 비용 등 여러 불확실성을 동반했고, 초기 시장 반응 또한 확신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삼성전자는 이 영역을 위험이 아닌 ‘새로운 사용 경험의 출발점’으로 설정했다. 사양의 우위를 넘어, 사용 환경과 맥락까지 설계의 범주에 포함시키겠다는 판단이었다.
노 대표는 이 전략을 제품 설계의 핵심 기준으로 삼았다. 그는 스마트폰을 ‘사용 흐름을 설계하는 플랫폼’으로 접근했고, 언제 어떤 상황에서 스마트폰이 사용되는지를 중심에 두고 설계 방향을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기술은 가능성만 보여줘선 안 되고, 사용자가 경험하도록 설계돼야 한다’라는 그의 발언은 삼성전자 제품 전략의 변화된 시선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김도현 한국디지털산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삼성의 폴더블 전략은 단순한 기술 실험이 아니라 사용자 행동을 재설계하려는 장기적 접근”이라며 “성능 중심 경쟁에서 벗어나 경험 중심으로 옮겨간 대표적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어 “이는 스마트폰을 기능 제품이 아닌 생활 패턴의 일부로 바라보는 산업적 전환”이라고 분석했다.
이러한 변화는 모바일 사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가전, 웨어러블, 서비스 플랫폼을 연결하는 구조를 강화하며 ‘디바이스 경험’의 통합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다. 기기를 하나의 완성품이 아닌 경험의 중간 매개로 보는 관점이다.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에서 생활환경을 설계하는 기업으로 이동하는 전략이라 볼 수 있다.

구조 재편과 DX의 진화, ‘부문 통합’이 던지는 의미
삼성전자의 DX(디바이스경험) 부문을 중심으로 한 통합 운영 체계는 제품 단위가 아닌 ‘경험 단위’로 기업의 축을 옮기려는 시도로 읽힌다. 모바일, 가전, 영상, 서비스로 분산됐던 영역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겠다는 전략은 기술 중심 제조 기업에서 경험 설계 기업으로의 전환을 전제로 한다. 노태문 대표의 선임 역시 이 구조 변화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과거 삼성전자의 조직은 사업부별 독립성이 강하게 작동하는 구조였다. 각 부문이 자체 성과를 중심으로 움직이며 빠른 실행력을 보였지만, 동시에 제품 간 연결성과 서비스 확장에는 한계를 드러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디바이스 간 유기적 연결과 플랫폼 확장을 위해 ‘DX 중심 체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조직을 재편하고 있다. 이는 개별 사업 성과보다 전체 사용자 경험의 흐름을 우선에 두는 선택이다.
이 변화는 기술의 방향과도 맞물린다. AI, IoT, 스마트홈, 데이터 기반 서비스가 결합되는 구조 속에서 기기는 더 이상 독립된 완제품이 아니라 연결의 일부가 된다. 스마트폰은 가전과 연결되고, 가전은 플랫폼과 연계되며, 플랫폼은 다시 사용자 생활 패턴과 맞닿는다. 삼성전자가 DX 부문을 전면에 내세운 이유도 이러한 연결 구조를 현실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이 지점을 ‘삼성전자의 구조적 실험’으로 본다. 오세훈 산업전략컨설팅그룹 대표는 “DX 중심 조직 개편은 단순한 효율 개선이 아니라 사업 개념 자체를 바꾸려는 접근”이라며 “제품 단위가 아닌 경험 단위로 기업을 운영하려는 의지가 드러난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이 구조가 제대로 작동할 경우 삼성의 경쟁력은 제조를 넘어 플랫폼으로 확장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구조 변화가 곧 성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통합 체계는 빠른 의사결정과 유연한 조율이 함께 작동해야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사업부 간 이해관계 조정, 조직 내 권한 재배분, 업무 방식 변화는 필연적으로 마찰을 동반한다.
DX 체계의 진화는 결국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의 문제다. 삼성전자가 선택한 이 구조가 단순한 통합에 그칠지, 실제 사용자 경험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이어질지는 향후 운영 방식에 달려 있다.

글로벌 전략과 확장, ‘삼성전자’의 다음 좌표
노태문 대표 체제에서 주목해야 할 변화는 ‘리더십’보다 ‘글로벌 전략의 방향’이다.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 둔화와 함께 애플, 중국 제조사, 글로벌 플랫폼 기업과의 경쟁 구도가 복잡해지는 가운데 삼성전자는 기술 개발과 동시에 국제 협력의 무게중심을 조정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글로벌 진출을 넘어, 전장 산업의 규칙 속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움직임으로 읽힌다.
삼성전자의 글로벌 전략은 AI, 운영체제, 플랫폼, 데이터 연동 구조를 포함한 ‘기술 동맹’이 핵심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구글과의 협력, 글로벌 파트너십 강화, 생태계 확장 전략은 기술 주도권 확보를 위한 현실적 해법이다. 제품을 중심으로 경쟁하던 구도가 플랫폼과 경험 단위의 경쟁으로 재편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 역시 단독 플레이보다 연합 구조에 무게를 싣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글로벌 기술 지형 속에서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이준호 국제산업연구소 연구위원은 “삼성전자의 글로벌 전략은 이제 제품 경쟁에서 플랫폼 경쟁으로 전환되고 있다”라며 “자체 기술력만으로 모든 영역을 커버하는 방식보다 협업을 통한 확장 전략이 현실적인 해법으로 자리 잡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노태문 대표에게 주어진 과제 역시 이 지점에서 본격화된다. 모바일 중심에서 AI·플랫폼 기반의 글로벌 네트워크로 확장되는 삼성전자의 전략을 실무적으로 구현하는 역할이다. 단순한 제품 책임자가 아니라, 글로벌 흐름 속에서 삼성전자의 입지를 재정의해야 하는 자리라 할 수 있다. 기술과 협력, 경쟁과 공존의 균형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복합적인 판단의 장이 열린 셈이다.
나아가 글로벌 전략의 핵심은 ‘확장’보다 ‘지속성’에 있다. 단기 점유율이 아닌 장기 생태계 구축, 시장 침투가 아닌 구조 설계가 중심이 된다. 삼성전자가 선택한 이 방향이 일시적 유행에 그칠지, 새로운 글로벌 표준으로 이어질지는 지금부터의 실행력에 달려 있다.

기대와 우려의 교차, 시장이 던지는 질문
노태문 대표의 대표이사 취임 이후 삼성전자를 향한 시선은 기대와 신중함이 동시에 얹혀 있다. 한쪽에서는 기술을 이해하는 리더가 전면에 섰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거대 조직의 방향 전환이 한 인물의 역량만으로 충분히 뒷받침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이번 인사는 환영과 검증이 동시에 작동하는 장면이다.
긍정적인 평가의 중심에는 ‘현실성과 일관성’이 놓여 있다. 모바일 사업을 통해 성과를 입증해 온 경험, 제품 개발 과정에 직접 관여해 온 이력, 기술 흐름에 대한 이해는 조직 운영의 신뢰도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단기 성과를 위한 급격한 변화보다 기존 축적을 기반으로 한 점진적 전환을 택했다는 점도 안정적인 선택으로 평가된다.
반면 우려는 ‘확장성’에서 제기된다. 모바일 중심의 경험이 가전, 서비스, 플랫폼 전반으로 자연스럽게 확대될 수 있는지, 기술 중심 의사결정이 조직 전체의 전략 판단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삼성전자의 경영 구조는 이제 제품만이 아니라 브랜드, 글로벌 전략, 조직 문화까지 아우르는 복합적인 영역을 요구받고 있다. 이 지점에서 리더십의 성격 또한 재정의된다.
박재훈 한국기업분석연구소 연구위원은 “노태문 대표의 강점은 분명한 기술 기반과 실행력이지만, 대표이사에게 요구되는 것은 기술 역량을 넘어선 전략적 통합 능력”이라며 “조직과 시장, 내부와 외부의 균형을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향후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변수는 변화 속도다. 급격한 구조 전환은 내부 피로도를 높일 수 있고, 과도한 안정 추구는 시장 대응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삼성전자는 지금 ‘변화해야 하는 기업’이면서 동시에 ‘안정이 필요한 조직’이라는 이중적 과제 위에 서 있다. 그 균형을 어떻게 유지하느냐는 대표 개인의 리더십을 넘어 조직 전체의 시험대라 할 수 있다.
지금 삼성전자가 맞닥뜨린 현실은 기술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시장의 기대, 조직의 체질, 브랜드의 신뢰가 동시에 시험받고 있다. 이 복합적인 지점에서 노태문 대표의 리더십은 ‘결과’보다 ‘방식’으로 먼저 평가될 가능성이 크다. 얼마나 빠르게가 아니라, 얼마나 정확하게 방향의 기준을 잡느냐가 중요한 순간이다. 그리고 그 기준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곧 삼성전자의 다음 얼굴이 될 것이다.
이슈메이커 김남근 기자 issue8843@issuemake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