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노동의 균형 위한 ‘일시적 퇴장’
삶과 노동의 균형 위한 ‘일시적 퇴장’
Z세대 직장인의 새로운 은퇴 활용법
정년 은퇴 대신 경력 중간 소규모 은퇴 반복
최근 젊은 직장인 사이에서 ‘마이크로 은퇴(Micro Retirement)’ 문화가 번지고 있다. 이는 전통적인 정년 이후의 은퇴가 아니라 경력 중간중간 짧은 소규모 은퇴를 반복적으로 가져가는 새로운 노동 형태를 의미한다. 마이크로 은퇴는 ‘평생직장’, ‘한 직업’이라는 경력 관념에서 벗어나 다양한 경로를 탐색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Z세대 구직자 65% 마이크로 은퇴 선호
마이크로 은퇴는 지난 2007년 ‘미니 은퇴(Mini Retirement)’라는 이름으로 팀 페리스의 저서 ‘나는 4시간만 일한다’를 통해 처음 소개됐다. 작가는 “왜 60세까지 일을 하다 갑자기 인생을 소비하려 드는가”라며 평생 한 번의 은퇴가 아닌, ‘은퇴 같은 시간’을 삶의 중간중간에 배치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이는 보편적 직장인의 현실에는 적용하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해당 개념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일과 생활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Z세대를 중심으로 번아웃과 삶의 불균형을 경험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다. 이들은 ‘생계를 위한 노동’ 대신 ‘삶의 질과 정신건강’을 중요하게 여긴다. 변화하는 분위기 속에서 은퇴를 미래의 ‘목표’가 아닌, 현재 내 삶을 점검하고 회복하는 ‘쉼표’로 삼기 시작한 것이다.
채용 플랫폼 캐치가 Z세대 구직자 2,19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인생의 끝자락에서 맞이하는 ‘전통적인 은퇴(35%)’ 방식보다 일정 주기마다 퇴사나 휴직을 통해 휴식기를 갖는 ‘마이크로 은퇴(65%)’ 형태를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마이크로 은퇴를 시도할 의향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는 60%가 ‘시도하고 싶다’라고 답했고, ‘언제쯤 시도할 계획인지’ 묻자 ‘언제든 필요할 때’라는 응답이 25%로 가장 많았다.

마이크로 은퇴 선호의 배경에는 기업에 대한 신뢰 부족이 첫 손에 꼽힌다. 이전 세대와 달리 정규직의 개념이 보편적이지 않아 고용 불안정이 기업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빠른 은퇴를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과거 회사에 희생하면서 일하는 게 당연했던 인식에서 벗어나 Z세대는 회사에 대한 희생을 원하지 않는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서유정 선임연구위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지금의 젊은 세대는 기업을 믿지도 않고, 기업을 위해 열심히 일하지도 않는다”며 “기업은 이런 근로자로 어떻게 생산성을 높일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반적인 일자리의 질 저하로 인해 마이크로 은퇴가 발생한다는 진단도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300인 이상 사업체 월평균 취업자는 58,000명에 그쳤는데, 이는 2022년 18만 2,000명에 비해 3분의 1에 불과한 수치다.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청년들이 계속 새로운 직장을 찾아 떠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쟁이 자의 반 타의 반의 ‘쉼표’를 부른다는 지적이다.

기업과 개인 악영향 주지 않을 방법도 고민해야
이처럼 젊은 세대가 마이크로 은퇴에 주목하는 이유는 단순히 휴식을 위한 목적만은 아니다. 조기 은퇴나 자산 독립을 추구하는 ‘파이어(FIRE)족’과 달리 마이크로 은퇴는 원직장 복귀나 재취업을 전제로 하는 ‘일시적 퇴장’이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 역시 Z세대의 마이크로 은퇴를 “정신건강뿐 아니라 창의성과 직업 정체성 회복을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풀이했다.
실제 직장을 벗어난 시간을 ‘전환의 자원’으로 여기는 인식은 온라인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 #MicroRetirement, #MiniSabbatical과 같은 해시태그가 빠르게 퍼지며 “쉼은 낭비가 아니라 투자”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고, 퇴사 후 긴 시간 해외여행을 가거나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콘텐츠가 젊은 층의 큰 공감을 얻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마이크로 은퇴의 핵심은 ‘계획된 멈춤’이다. 다시 말해 철저한 준비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경제적 여유가 부족하거나 가족 부양 책임이 크면 갑작스러운 휴직이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전문가들도 계획한 휴식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음을 경고하며 예상되는 위험을 미리 시뮬레이션해볼 것을 추천한다. 예전처럼 근로자의 이직과 경력 공백을 조직 부적응자로 생각하는 경우는 없어졌지만, 여전히 직장 문화가 크게 바뀐 건 아닌 만큼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마이크로 은퇴를 한 번쯤 해보고 싶다면 목적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재정 점검을 통해 생활비를 미리 확보하고, 일정한 생활 주기 속에 새로운 시도와 복귀를 위한 준비도 철저히 해야 한다. 의미 있는 활동이 이뤄지면 향후 직장으로 돌아갈 때 ‘공백’이 아닌 새로운 ‘포트폴리오’가 될 수 있어서다.

한편 마이크로 은퇴로 인해 Z세대의 잦은 이직과 휴직은 기업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양질의 일자리 부족으로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지 못한 근로자에게는 자신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업무만 수행하고 그 이상의 업무는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조용한 사직(Quite Quitting)’이 발생하는데, 이 조용한 사직이 마이크로 은퇴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곧 기업 입장에서 그만두지 않을 사람을 뽑는 경우와 비교했을 때 성과가 낮아질 뿐만 아니라 인재 육성에 들인 비용을 이중으로 소모하게 되는 구조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마이크로 은퇴 현상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Z세대의 직업관이 바뀐 것을 사회적으로 받아들이고 제도를 유연하게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영국의 경우 ‘0시간 고용’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0시간 근로계약은 근로시간을 사전에 정하지 않고 사용자가 필요할 때 근로를 제공해 일한 시간만큼 임금을 받는 근로 형태를 의미한다. 이를 통해 직원과 사업주가 소통해서 사실상 안식월을 만들 수 있다. 독일은 연장근로를 하고 수당을 받지 않을 경우, 연장 근로한 만큼을 축적해 놨다가 안식월로 쓸 수 있는 제도를 시행 중이다.
기업들을 기존 일하던 관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근로자의 적응력을 높이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찾고, 채용 후 인적자원으로 개발하는 데 있어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신입 직원을 어떻게 육성할지에 대한 장기적 비전을 제시해 기업의 신뢰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슈메이커 손보승 기자 rounders23@issuemake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