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AI로 진화하는 유통의 제왕
AI로 진화하는 유통의 제왕
매장 자동화·물류 혁신으로 新 성장 동력 확보
다양한 배송시스템 도입으로 옴니채널 경쟁력 강화
전 세계 19개국에서 1만 곳 넘는 매장을 운영하는 ‘월마트’는 지난해까지 12년 연속 글로벌 매출 1위를 차지한 세계 최대 소매업체다. 온라인 쇼핑 시대에 접어들며 한때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왕좌를 유지하기 위한 분투의 결과 월마트는 여전히 미국 유통업계를 주도하는 기업으로 우뚝 서 있다.
위기 딛고 다시 일어선 ‘유통 공룡’
월마트는 1962년 샘 월튼 창업주가 아칸소주에 작은 잡화점을 연 것으로 출발했다. 대도시 지역이 아닌 미국 중서부와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성장해 안정적 수익 구조를 만들었는데, 특히 부동산 가격이 저렴한 지역에 매장을 열며 ‘최저가 정책’의 기반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얻은 이익을 물류 시설 등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유통 비용을 절감했다. 1990년대 이후로는 본격적으로 대도시로 진출해 그간 쌓은 경쟁력을 바탕으로 지금의 위치에 오르게 됐다.
하지만 ‘아마존’이 등장해 소비자들이 온라인에서 물건을 구입하기 시작하자 월마트의 위상이 흔들리기도 했다. 급기야 ‘월마트의 시대는 끝났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기까지 했다. 그러자 월마트는 2021년 이후 매장 2,000곳을 리모델링하며 오프라인에 적극적으로 투자함과 온라인 시장 점유율을 높여나가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지난해 4분기 및 연간 실적 발표에서 매출이 6,810억 달러에 달해 전년보다 5.1% 증가했다. 1년 전 자체 전망치보다 높은 성장률이었고, 아마존보다 430억 달러 정도를 더 벌어 매출 1위 자리를 지켰다. 이에 대해 월마트는 ‘고소득 가구’가 성장을 견인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2월 기준 연 소득 10만 달러 이상 가구의 89%가 월마트에서 쇼핑하고 있다고 응답했는데 이는 5년 전 77%와 비교해 12%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월마트에 대해 ‘매우 긍정적’ 인식을 한 고소득층도 2019년 27% 수준에서 작년 36%로 증가했다.
이는 창사 이래 ‘매일 저렴한 가격(Every Day Low Prices)’을 내세워 저소득층과 중산층을 공략해 왔던 것과는 다른 흐름이다. 그럼 고소득층이 월마트를 선호하기 시작한 요인은 무엇일까? 일각에서는 미국 내 고물가가 오래 지속되면서 싼 물건을 찾는 이가 늘었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이커머스(전자상거래)’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꾸준히 온라인 사업을 확대하며 상품 구색이 잘 갖춰졌고, 배송 방식이 다양해지자 고소득자도 자주 주문하게 됐다는 뜻이다. 고급 식료품과 트렌디한 상품을 강화한 전략도 효과를 거둔 것으로 분석된다. 월마트는 2023년 고급 식료품을 포함한 자체 프리미엄 브랜드 ‘베러굿즈’를 출시했고, SNS에서 화제가 된 에르메스 버킨 백의 저렴한 대체품인 ‘워킨백’도 전략적으로 내세워 인기몰이했다.
실제 월마트는 이번 실적 발표를 통해 전체 매출 가운데 이커머스 매출 비율이 18%라고 밝혔다. 1년 전보다 3%포인트, 5년 전보다는 11%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온라인 전략의 핵심은 다양한 배송시스템 도입을 통해 옴니채널 경쟁력을 강화한 것이 꼽힌다. 손님이 온라인에서 상품을 주문하면 매장에서 즉시 배달해주거나, 지정한 매장을 방문하면 직원들이 자동차에 상품을 실어주는 서비스 등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월마트는 현재 미국 식료품 시장의 25%를 차지하고 있다. 현지 소매 시장에서 경쟁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어 월마트가 더욱 돋보이고 있는 측면도 있다. 크로거와 앨버트슨은 월마트에 맞서 합병을 시도했지만 반독점 규제로 무산됐고, 저가형 유통업체인 달러스토어도 월마트의 공격적 가격 정책으로 인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타깃도 인플레이션 영향으로 주력 상품의 판매 부진을 겪고 있다. 아마존 역시 여전히 오프라인 소매점에선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월마트가 실적 발표에서 이커머스와 함께 강조한 건 광고 사업이다. 월마트는 지난해 광고 사업으로 44억 달러를 벌었는데, 1년 전보다 29% 증가한 수치다. 온라인몰의 배너와 검색창뿐 아니라 매장 내 무인 계산대와 오디오 광고까지 다양한 ‘광고 매대’를 제공한다. 이것이 가능한 건 그간 쌓은 고객 데이터 덕분이다. 데이터를 분석해 제품을 살 만한 고객에게 광고를 내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월마트는 이를 위해 지난해 스마트TV 업체 ‘비지오’까지 인수했다. 스마트TV를 통해 무료 콘텐츠와 함께 광고를 내보내면서, 동시에 시청 데이터까지 수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디지털 전환 성공으로 쾌속 질주 이어가
월마트가 도모한 적극적인 변화 중 대표적인 것은 매장과 물류센터에 로봇 기술을 도입해 운영 효율을 극대화한 것이다. 모든 지역 물류센터에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해 입·출고 속도를 높였으며, 온라인 주문 처리를 위한 로봇 픽업이 가능한 매장도 확대하고 있다. 아울러 직원들이 스마트폰으로 실시간으로 재고를 관리하고 인공지능(AI) 기반 자동화 시스템을 활용해 업무를 최적화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자율주행 지게차를 도입해 근로자들이 운행 대신 감독 역할만 맡고 있기도 하다.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식료품 공급망 관리에도 AI를 활용하고 있다. 공급업체와의 협상 때는 AI 기반 기업 거래 자동화 플랫폼 기업 ‘팩텀’과 함께 개발한 AI 챗봇으로 협상 시간을 대폭 줄이는 데 성공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온라인 쇼핑과 같은 편리함을 제공하고자 첨단 디지털 기술도 도입 중이다. 생성형 인공지능(AI) 기반 상품 검색 기능을 애플리케이션으로 제공해 쇼핑 과정을 간편하게 하고, 매장에서 대기 없이 결제할 수 있는 자동 체크아웃 시스템을 확대하고 있다. 여기에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을 활용한 소셜커머스 플랫폼을 통해 매장 내에서 친구와 함께 쇼핑을 즐길 수 있는 등 다양한 디지털 기술을 통해 고객들의 오프라인 매장 경험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른바 ‘적응형 리테일’을 표방하는 것인데, 소비자가 처할 수 있는 모든 쇼핑 환경과 상황에 맞춰 최고의 경험을 선사하기 위한 목적이다.
이러한 디지털 혁신으로 힘을 잃어가던 오프라인 유통업에 다시 성장 동력을 불어넣게 된 비결에 더그 맥밀런 최고경영자(CEO)의 리더십도 빠질 수 없다. 10대 시절 물류센터에서 트럭의 짐을 내리던 임시직으로 월마트와 인연을 맺었던 그는, 대학 졸업 후 월마트 매장의 보조 관리자와 본사 직원을 거쳤다. 이후 2005년 월마트 계열 도매 매장인 샘스클럽의 영업 담당 사장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경영인의 길을 걷기 시작해 2009년 월마트 인터내셔널 담당 사장을 지낸 뒤 2014년 2월 월마트 CEO 자리에 올랐다.
당시 48세라는 최연소 나이에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른 맥밀런은 조직의 혁신을 주도해왔다. 2016년 ‘제트닷컴’을 시작으로 2017년 ‘슈바이’와 ‘무스조’, 2018년 인도의 대형 전자상거래 기업인 ‘플립카트’를 두고 아마존과 치열한 경합을 벌인 끝에 승기를 잡는 등 전자상거래 기업을 잇달아 인수했고, 창업주 가족의 전폭적 지원 속에 장기적 관점에서 디지털 전환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빠른 변화와 대응을 위해 직원들에게 과감하게 권한을 부여하고, 디지털 기술과 유연한 사고방식 습득을 위해 교육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맥밀런 CEO의 리더십은 월마트의 성공이 210만 명에 달하는 직원들이 고객과 직접 대면하는 현장에서 이뤄졌다는 확고한 고객 중심 문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는 매일 고객과 회원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가 1등이든 2등이든 상관없이 항상 그럴 것”이라고 하면서 흔들림 없는 고객 중심 문화를 강조했다. 생존을 위한 선택이 아닌 필수 요소로 ‘혁신’을 택한 월마트의 쾌속 질주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슈메이커 손보승 기자 rounders23@issuemake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