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제재로 발생하는 문제들, 이대로 괜찮은가
사적 제재로 발생하는 문제들, 이대로 괜찮은가
‘사적 제재’로 발생하는 문제점들과 이에 대한 대응은
최근 한 유튜버의 ‘밀양 성폭행 사건’ 신상 공개에서 무관한 사람들이 피해를 입기도
최근 한 유튜버가 ‘밀양 집단 성폭행’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하면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가운데 구독자 수 증가 등으로 해당 유튜버의 한 달 최소 수입이 4000만 원을 넘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또한 범죄자가 범죄 사실을 폭로 당하지 않기 위해 사적 제재 유튜버에게 돈을 주는 등의 문제들도 발생하고 있다. ‘정의 구현’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상은 막대한 경제적 수익을 노리고 피해자 동의 없는 범법 행위로 2차 가해까지 일삼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사적 제재의 정의 구현?
다양한 미디어의 소재가 된 '사적 제재'란 법률에 의하지 않고 개인이나 사적 단체가 가해자들에게 가하는 모든 형태의 사회적 제재를 의미한다. 공권력이 아닌 개인들이 누군가를 사적으로 제재하는 것은 법치주의 국가에서 금지되고 처벌의 대상이 되지만 '사적 제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높아지고 있다.
최근 법으로 벌하지 못하는 범죄자들을 처단한다는 '사적 제재' 콘텐츠로 방송하던 유튜버가 범죄 의혹 등을 폭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수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이 유튜버는 구독자가 30만 명에 이르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압구정 롤스로이스 뺑소니' 사건 가해자인 신모(28)씨의 고등학교 선배 A씨에게 신씨와의 친분과 A씨의 별도 범죄 의혹을 유튜브에서 공개하겠다고 협박해 3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는다.
해당 유튜버는 사회적 공분을 낳은 폭행·아동학대 사건 등의 가해자 신상을 공개해왔는데, 압구정 롤스로이스 사건 외에 다른 사건 가해자 등 2명으로부터도 같은 수법으로 총 1억8000만원 상당을 받아낸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무고한 피해 사례가 발생한다는 점도 문제다.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과 관련해 한 유튜버가 가해자들의 신상을 공개하면서 이와 관련 없는 사람들의 피해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밀양시의 한 네일숍이 '가해자의 애인이 운영하는 곳'으로 지목되면서 누리꾼들이 업체 리뷰를 통해 욕설과 비판을 쏟아냈다. 그러나 가해자와 가게가 무관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네일숍 주인은 신상을 공개한 유튜버를 업무방해 등 혐의로 처벌해달라고 경찰에 진정을 냈다.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의 의사 또한 존중받지 못했다. 이번 사적 제재가 피해자의 의사와 전혀 무관하게 이뤄졌다는 점. 신상을 공개한 측은 지난 5일 커뮤니티 공지를 통해 “피해자 가족 측과 메일로 대화(를) 나눴고, 44명 모두 공개하는 쪽으로 결론이 난 상태”라고 밝혔다. 하지만 피해자를 지원해온 한국성폭력상담소는 “피해자 측은 ‘밀양 집단 성폭력 사건’에 대한 영상을 게시되기 전까지 해당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며 “사전 동의를 질문받은 바도 없다”고 밝혔다. 오히려 상담소 측은 “해당 영상이 올라온 후인 3일 영상 삭제 요청을 했다”고 덧붙였다. 사적 제재 콘텐츠를 생산하는 유튜버들이 사적 이득을 취하는 것 역시 큰 문제다. 유튜브 콘텐츠 조회수가 수입으로 직결되는 시스템 때문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피해자의 의사 존중과 거리가 먼 일방적 영상 업로드와 조회수 경주에 당황스러움과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사적 제재가 생기는 이유와 대책
사적 제재를 지지하는 배경엔 사법 불신이 가장 크다. 현행 사법 체계에서 사법부가 범죄자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고 있다는 생각이 사적 제재를 지지하게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피해가 큰 강력범죄 가해자의 낮은 형량을 보며 사법 체계가 피해자를 보호하고 있지 않다는 실망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분별한 사적 제재는 사회의 질서와 법에 대한 신뢰를 더욱더 무너뜨릴 수 있으며 선의의 피해자를 낳거나 마녀사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아울러 사적 제재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논의가 필요하다. 사적 제재에 대한 관련 법률이나 제도는 없으며 개인의 가치 판단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사적 제재는 2차 가해의 우려가 크고,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다. 법·제도에서 벗어난 사적 응징은 사회 질서를 위협할 수 있다.
하지만 가해자들이 응분의 처벌도 받지 않고 발 뻗고 살아가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 한 사적 제재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대중의 눈높이와 요구에 부합하도록 사법 체계가 개선돼야 한다. 공익의 기준과 범위를 고민하고 대중의 법 감정과 실제 판결 사이의 현실적 괴리를 극복하고자 국가 차원에서의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양형 기준을 개선하고, 시대 변화와 대중의 목소리를 반영함으로써 적절한 처벌이 있어야 한다. 또한 대중도 사적 제재의 문제점에 대해 인식하고 조금은 냉철한 생각을 갖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이슈메이커 김민지 기자 minjkim@issumake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