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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법 감정 Ⅰ] 왜 ‘솜방망이’ 처벌은 반복되는 걸까?

매거진

by issuemaker 2021. 3. 19.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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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솜방망이’ 처벌은 반복되는 걸까?
 

국민적 공분이 큰 흉악 범죄나 강력 사건의 범죄자들에게 가해지는 형량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웃하곤 한다. 분노한 누군가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찾기도 하고, ‘솜방망이’ 처벌을 받은 강력 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디지털 교도소’가 대중적 호응을 얻으며 큰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는 우리 국민들의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Pixabay


처벌수위와 국민 법 감정의 괴리 커
지난해 연말 뉴욕타임스 등 외신들은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이 12년형을 마치고 출소하자 “한국에서 악명 높은 아동성범죄자가 자유롭게 활보하게 됐다”며 솜방망이 처벌에 주목했다. 이어 아동 음란물 사이트를 운영한 손정우가 1년 6개월 형량을 받고 한국 법원이 손씨에 대한 미국 법무부의 인도 요청을 기각했던 점도 언급했다. 손정우의 경우 미국에서는 아동이나 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을 소지하기만 해도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에 처하고, 판매나 배포할 경우에는 5년 이상 2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는 것에 비해 1년 6개월이라는 형기는 너무 짧은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조두순의 출소를 앞두고 그를 격리하기 위인 ‘보호수용법’ 제정 논란도 발생했다. 이러한 요구들이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분노의 지점은 관대한 것처럼 비춰진 그의 형량 때문이다. 지난 2008년 12월, 등교 중이던 8살 초등학생을 납치해 성폭행한 조두순은 당시 음주 상태였다는 ‘심신미약’이 참작돼 징역 12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7년, 신상정보 공개 5년형을 확정 받았다. 나이가 많고 술에 취한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국민들의 강력처벌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다. 법원이 양형기준에 크게 어긋나는 판결을 하는 것에 대한 부담도 있었겠지만 당시 범죄의 흉악성에 비해 안일하게 대처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 때문에 출소 당시 조두순을 향한 사적 보복을 예고하는 글이 쏟아졌다. 그만큼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처벌수위와 국민 법 감정의 괴리가 크다는 방증이다.
 
실제 지난해 한국리서치의 조사결과 법원의 판결에 대해 신뢰한다는 응답은 29%에 그쳤고 전체 응답자의 66%가 법원의 판결을 믿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죄질이 무거운 범죄자에 대한 처벌 수위에 대해서도 응답자의 87%는 법원에서 선고하는 범죄자에 대한 형벌이 가볍고 관대하다고 생각했다. 법원의 판결이 국민의 법 감정 사이의 온도차가 크게 느껴지는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국민들의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심화된 것이다.
 
음주운전에 대한 국민들의 여론도 강경하다. 과거와 달리 ‘음주운전은 살인죄를 저지르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인식이 일반적으로 자리 잡았고 이는 법 제정에도 강력한 영향을 미쳐 2018년 11월 ‘윤창호법’으로 불리는 음주운전 처벌강화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 요구
그렇다면 왜 법 감정과 법원의 실제 선고 형량 사이에는 괴리가 발생하는 것일까. 사실 법학자들은 각종 범죄에 대해 ‘법정형’이 낮은 편은 아니라고 말한다. 실제 한국은 대륙법 체계를 따르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형량이 낮지만은 않다. 대륙법은 판사의 재량권이 비교적 약하며, 인간을 교화의 대상으로 본다. 따라서 처벌보다는 교화에 무게중심을 두는 형사판결을 지향한다.
 
하지만 법체계 탓만 할 수 없다는 지적도 법조계에서 힘을 얻고 있다. 법정형대로 양형이 잘 이뤄지지 않아서다. 이로 인해 사법부는 그동안법관에 따라 양형의 편차가 너무 크다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2007년 대법원 양형위원회를 설치해 그동안 주요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설정했다. 이와 함께 재판부가 양형기준에 따라 적정 형량을 선고하도록 했다. 그리고 단순수치만 살펴보면 양형기준 준수율이 90%에 달할 만큼 잘 지켜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양형기준의 폭이 너무 넓어 판사들의 온정주의적인 태도가 개입할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현행법상 강제추행은 형법상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고, 대법원 양형기준대로라면 기본 6개월에서 2년 사이의 형량이 선고되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강제추행은 재판부 재량으로 집행유예로 빠져나올 수 있다. 더욱이 국회 입법조사처의 ‘합리적 형사처벌을 위한 사법부의 과제’를 보면 사법부가 높은 양형기준 준수율을 보이는 것은 많지만 집행유예 선고 비율은 통계에서 빠트려 양형기준 준수 여부로 판단하지 않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역으로 양형기준을 이탈할 경우 판결문에 양형이유를 기재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지나치게 높은 형량을 주기에는 법관에게 부담이 되는 경우도 있다.
 
양형기준이 낮다는 비판도 여전히 존재한다. 기존 판례들의 평균값을 토대로 양형기준 권고형량 범위를 정하다보니 ‘보수적’인 판례들이 나오고 있어서다. 문제를 인식한 양형위원회는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된 엄중한 현실을 인식하고, 기존 판례에서 선고된 형량보다 높은 양형기준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며 국민의 여론을 반영한 기준 마련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판사가 이를 제대로 적용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형량을 선고할 때 판사의 재량이 개입될 여지를 줄이자는 의견도 나온다. 양형정보시스템을 도입해 이용자들이 언론보도가 아니라 보다 구체적인 정보를 확인한다면 법관이 임의로 가중하고 감경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판결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무엇보다 절실한 부분은 판사들이 국민의 법 감정에 따라 휘둘린다고 생각할 것이 아닌, 세상이 변화하는 만큼 사회적 요구를 무겁게 받아들일 인식의 전환이다.

이슈메이커 손보승 기자 rounders23@issuemak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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